[데스크라인]새벽배송 금지와 러다이트

2025-11-20

천재 사상가로 불리는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는 표현을 쓴다. 농업혁명을 통해 식량 총량은 늘었지만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으며, 그 결과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더 열악한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 이 문구를 읽고 격한 공감을 느꼈던 것은 우리 삶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짧은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디지털혁명, 스마트혁명을 거쳐온 인류의 여건 전반이 더 나아졌다 할 수 있을까.

인터넷을 쓰기 전에는 기자들도 책상에 앉아 원고지로 기사를 쓰다보니 기사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었을 것이다. 해외 출장을 가도, 현지 출고는 극히 일부일 뿐 돌아와서 기사를 출고했다는 둥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된다.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심지어 버스 안에서도 새벽에 자다 깨서도 기사를 써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우리 사회의 업무 속도는 너무 빨라져 버렸다. 사람 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은 줄고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 앞에 앉아 입력하고 받아보는 데이터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변화의 흐름이라는 것은 막으려고 한다고, 되돌리려고 한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벽배송' 이슈가 한달째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노동계의 새벽배송 금지 주장이 알려진 후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 뿐만 아니라 워킹맘, 전세버스 업계까지 반발했다. 택배 기사의 건강권을 주장하는 건데 왜 이렇게 반발해서야 되겠냐고 노동계는 억울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수천만의 국민이 혁신의 편리함을 누려버렸고, 그로 인해 엄청난 또 다른 생태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이를 역행하는, 다시 말해 과거로의 회귀 주장과도 같은 셈이다.

혁신의 흐름을 거세게 막아선 일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혁신은 번번히 반발에 가로 막혔지만, 결국은 대세가 되곤 했다. 산업혁명 당시 “기계 때문에 고통을 계속 받을 바에야 차라리 부숴버리겠다”면서 일었던 러다이트 운동은 당시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실패로 돌아갔다. 기계로 인한 생산성 향상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영국은 1865년 자동차의 등장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마차운송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까지 만들었지만, 자동차 발전과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새벽배송 금지 주장은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나왔다. 이 기구는 이름과 달리 현재로서는 거의 대화는 이뤄지지 않고 주장만 제기된 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새벽배송 금지가 아니라 '0~5시 금지'와 같은 '제한'으로 주장의 양상이 바뀌었는데도 사회적 반발은 여전하다. 공회전만 거듭할 것이 아니라 이제 서로 조율이 가능한 대화로 나아가야한다.

최근 유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서는 '상사맨'이 등장한다. '증권맨'홍보맨'영업맨' 등은 특유의 열정과 직업관이 남달라 '맨'이 붙었다는 이야기다. 회사이름이 붙었으니 출발도 의미도 다를 수 있지만 쿠팡맨도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이미 커져버렸다. 거동이 불편해진 후 새벽배송을 해주는 기사를 만나면 꼭 감사 인사를 한다는 한 어르신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루 빨리 사회적대화기구에서 '해법'을 찾아가길 바란다.

문보경 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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