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삶의 ‘단장의 고개’를 넘으려면

2025-06-11

6월은 대한민국에서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현충일과 6·25 전쟁일이 있는 이 시기,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되새깁니다. 이맘때가 되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단장의 미아리고개’입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고개…”

어린 시절, 가사의 의미도 모른 채 어른들을 따라 흥얼거리던 이 노래는,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그 절절한 슬픔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6·25 전쟁 당시 미아리고개를 넘어 북으로 끌려가는 남편을 향해 오열하는 아내. 그의 절규를 단 한 단어로 요약하면 ‘단장(斷腸)’입니다. 문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의 이 표현은, 단순한 시적 수사가 아닙니다. 인간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형용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에서도 확인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도저히 이어질 수 없는 창자로 비유됩니다. 자식과 부모의 인연은 단순히 혈연을 넘어, 기와 정신의 깊은 연계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그 인연이 끊기는 순간, 창자도 따라 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중국 진나라의 고사에도 ‘단장지통(斷腸之痛)’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진나라 장수 환원이 청나라를 정벌하러 나서던 길, 부하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배에 태우자, 어미 원숭이는 삼협의 급류를 헤치고 100리(약 25마일)를 쫓아옵니다. 배에 올라 새끼를 품은 직후 숨을 거두었고, 그 시신을 해부해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창자란 생명과 감정의 축이기도 한 것입니다.

한의학적으로도 ‘단장’은 신체와 정서의 깊은 연계를 드러내는 핵심 개념입니다. 장(腸)은 단순한 소화기관이 아닙니다. 비위(脾胃)에서 생성된 진액과 기혈을 온몸에 공급하며, 심리적 자극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칠정(七情) 즉 기쁨, 노여움, 근심, 슬픔, 두려움, 놀람, 생각은 오장육부의 기운과 상호작용하며, 특히 슬픔은 폐(肺)와 연결되고, 폐는 대장(大腸)과 표리 관계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깊은 슬픔은 결국 장 기능에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큰 상실이나 충격을 경험한 뒤 갑작스러운 복통, 설사, 혹은 변비를 호소하는 환자들을 임상에서 자주 만납니다. 이는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장부 간 기운의 혼란에서 비롯된 질병 반응입니다. 옛 의서에도 “슬픔이 극에 달하면 장이 끓는다(悲極則腸鳴)”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말 ‘애끓는다’는 표현 또한 눈여겨볼 만합니다. 여기서 ‘애’는 곱창의 ‘애’, 즉 소장의 옛말입니다. 애가 끓고, 애를 태운다는 말은 슬픔이 소장에까지 파고들어 그 기능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의학적으로 보면 이는 기체(氣滯), 장의 허한(虛寒), 혹은 기혈순환의 정체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처럼 장은 정서와 신체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에, 장 기능의 회복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까지 염두에 둔 치료를 함께 해야합니다.

그중 하나가 천추(天樞)혈입니다. 천추혈은 배꼽 좌우 2촌 지점에 위치한 대장경의 주요 혈자리로, 장 기능 조절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복부 긴장과 통증, 정서적 위축으로 인한 복통에도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습관성 변비가 있는 노인이나, 장이 약해 잦은 설사를 하는 유아에게는 가정에서도 부드럽게 지압해주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위염, 장염, 생리불순 등에도 복부의 다른 혈자리와 병행하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특히, 천추혈에 쑥뜸을 병행하면 기혈 순환이 활발해져 치료 효과가 배가됩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단장의 고개’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고개를 넘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켜주는 한의학의 지혜가 여러분 곁에 함께 했으면 하는 호국의 달, 6월의 바램입니다.

강병선 / 침뜸병원 원장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