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처방전] 인생 후반, 관계의 깊이를 다시 생각할 시간

2025-06-12

“친구 아내가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어요. 아내를 잃은 친구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어요.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앞으로 아내에게 좀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경조사에 참석할 일이 많아진다.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 자녀의 결혼식, 손주의 돌잔치, 친구 본인이나 배우자의 부고까지. 이런 경조사 자리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생을 돌아본다. 그런 의미에서 경조사는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삶을 정비하는 시간이다. 이별과 만남은 인생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지만 50대 이후에는 전과는 다른 관계의 변화를 경험한다.

이때 겪는 여러가지 심리적 변화를 잘 소화해내는 것이 이 시기 삶의 과제가 된다. 예를 들면 남성의 경우 젊은 시절에는 조직 속에서 일하며 소속감과 유능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기에 은퇴에 따른 일과 관계의 변화는 고독감이나 자존심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어머니 역할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온 여성이라면 자녀가 결혼이나 취업으로 독립을 할 때 큰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50대와 60대가 겪는 관계의 변화에 상실이나 이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위나 며느리를 맞이하고 할아버지·할머니가 됨으로써 새로운 역할을 배운다. 이것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과 보람을 주며 50대 이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하지만 50대 이후 삶의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죽음일 것이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친구의 죽음 또는 지인들이 겪는 사별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은 죽음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이며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서 삶의 방향을 새로 설정한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아직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작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지 못하고 좁은 인간관계를 확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서 관계의 폭을 넓히기보다는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 관계를 중요시하게 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장수센터를 설립한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1953∼) 교수의 ‘사회정서적 선택 이론’은 50대 이후에 겪는 이런 심리적 변화를 설명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시간 관념과 감정적 우선순위가 변하고 이에 따라 삶의 목표를 재조정한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보다 의미 있는 활동과 소중한 관계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인간관계에 시간을 투자하는 대신 오래된 친구나 가족처럼 자신에게 익숙하고 긍정적인 기존의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런 변화는 남은 삶의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려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삶의 유한성을 실감할수록 사람들은 긍정적 감정과 경험에 집중하려 한다. 50대와 60대는 그런 의미에서 삶의 중심이 이동하는 시기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젊은 시절 불화를 경험했던 부부도 이 시기가 되면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형제자매를 더 자주 만나거나 옛날 친구들과 연락을 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조사를 겪으면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세간의 말이 야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50∼60대가 겪는 심리적 변화와 연결하면 이해가 된다.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표현해야 한다. 스스로를 잘 돌보고 하루하루 곁에 있는 사람과 따뜻하게 지내는 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의 가장 큰 지혜일 것이다.

김현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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