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이 임명직보다 높다는 착각

2025-09-17

입법ㆍ사법ㆍ행정은 대등한 관계

한 명이 삼권 장악하면 폭정 필연

대법원장 사퇴 압박은 반민주 작태

국회에선 의원들이 공무원에게 “어디 감히 임명직이 선출직에게 대드냐”는 식으로 윽박지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활용한 일종의 군기 잡기다. 보는 이에 따라 그런 언행을 볼썽사나운 갑질로 비판할 수도 있고, 명색이 국민의 대표인데 그 정도 쇼맨십은 봐줄 만하다는 반응도 나올 수 있다. 어쨌든 국회의원 한 명이 선출직과 임명직의 관계에 대해 어떤 착각을 하더라도 삼권분립이 흔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은 완전히 무게가 다르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임명직은 선출직에 대들 수 없다고 못 박으면 삼권분립은 파탄 나고 민주주의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에선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행정부ㆍ입법부), 간접 선출 권력(사법부)”이라고 말했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ㆍ국회의원이 임명직인 판사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에 서열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정치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 엄청난 발견이다. 하지만 당연히 사실일 리가 없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스키외는 1748년에 펴낸 『법의 정신』에서 근대적 의미의 삼권분립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몽테스키외는 한 사람이나 한 단체가 행정ㆍ입법ㆍ사법을 모두 장악하면 필연적으로 독재와 폭정이 발생하며, 시민의 자유ㆍ권리는 삼대 권력의 균형과 견제를 통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몽테스키외의 견해를 수용하면서도 대통령제라는 독특한 권력 구조를 고안했다.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간 삼권분립은 민주주의 국가의 표준 모델이 됐다. 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삼권이 분립돼 있을 때만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는 명제는 이제 확고히 입증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선거로 뽑는데 왜 판사는 그렇지 않은가. 첫째 판사는 고도의 법률 전문 지식과 판단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사를 선거로 뽑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둘째 판사까지 정치 논리로 뽑게 되면 삼권 분립이 무너질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건국 아버지들의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은 “사법부는 칼이나 지갑을 갖지 않은 가장 약한 권력이므로, 다른 두 권력(행정ㆍ입법)에 대항하려면 판사의 독립성과 안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통령ㆍ국회의원이 판사보다 권력 서열이 앞선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착각이거나 정치적 의도가 담긴 왜곡이다. 대통령ㆍ국회의원ㆍ판사는 각자 독립적인 역할을 맡은 것이며, 특히 판사에겐 정치와 여론의 압력에서 벗어나 헌법과 법률에만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이 꼭 필요하다. 판사들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여권이 공공연히 사퇴 압박을 가하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반민주적 작태다.

말 난 김에 선출직과 임명직의 도덕성도 한번 따져보자.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갑질 논란에서 드러났듯 선출직의 도덕성이래 봐야 별것 없다. 재산신고는 4억원대로 해놓고 차명 주식 거래로 10억 원대를 굴린 이춘석 의원의 경우는 또 어떤가. 법사위원장이란 중책을 맡아 법원ㆍ검찰을 질타해놓고 정작 뒤에선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다. 국회에서 차명 거래가 과연 이 의원 한 명뿐일까. 선출직엔 전과자도 수두룩하지만, 오히려 임명직 고위 공직자들은 젊어서부터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진정한 선출직인지도 의문이다. 비례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 지역구 의원이 공천만 되면 거의 당선이 보장되는 지역 출신이다. 이들은 사실상 당의 오너가 내리꽂은 임명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에서 당선됐다고 그렇게 유세 떨 일은 아니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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