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결정 중이다. 요즘 나는 결정을 미룬다. 일부러 악의적으로 미루는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으면 젊을 때보다, 더 확실하고 빠르게 모든 일을 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덜 아픈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린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일이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긋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을 하다 보면 늘 선택의 순간이 도래한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일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하며, 어떤 속도로 진행시킬지, 어떤 이유로 마무리할지, 모든 상황이 선택이다. 그 결정으로 수입이 늘 바뀌고 그 때문에 가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상황에서의 결정이다. 아이에게 어디까지 허락할지, 어디서 멈추게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단호할 때는 언제이며 기다려줄 때는 언제인지. 그 경계선은 늘 흐릿하며, 모호하다. 감정이 앞서 주제를 벗어나 화를 낸 뒤에는 단순지적이 아닌 내 감정만을 쏟아냈다는 것을 알았고, 그 뒤에는 홀로 그 순간들을 곱씹으며 후회한다. 단순히 경험과 나이가 많고 내가 부모가 되었다고 해서 당연하게 결정들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늘 아이 앞에서는 미숙한 판단의 연습을 하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지금의 일이 내게 맞는지, 언제까지 이 생활을 하며 살아갈지, 바꾸고 싶다는 마음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결정을 고민하고 미루는 중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멈추었을 때 시간도 같이 멈췄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든다. 그 순간에는 여러 갈림길 길목에 홀로 서 있는 기분도 든다.
주변 사람들과 살아가다 보면 감정 앞에서 더욱 그렇다. 참을지 말지, 넘길지 말지,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편해지고, 반대로 말하면 상대방과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예전에는 솔직함의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지금은 침묵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그 침묵이 언제까지 유효함을 가지는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우유부단함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삶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연말이 되면 결정은 더 재촉된다. 내년의 계획, 목표의 방향. 구체적인 실행법 등등. 하지만 나는 요즘 빈칸을 남겨두는 연습을 한다. 반드시 정해야 할 것만 적고, 나머지는 여백으로 둔다. 모든 것을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안정시킨다.
나는 아직 결정 중이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이다. 완성된 답을 내놓기보다는 바뀔 수 있는 선택을 안고 살아가겠다는 말이다. 올해도 미룬 결정이 많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사람을 더 많이 보았고, 말은 덜 했고,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직 결정 중이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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