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영의 ‘아는 그림’
빈센트의 꽃은 사람처럼 보인다. (카미유 피사로)
이처럼 꽃과 빛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림으로 표현한 사람이 어찌 그리도 불행하게 살다 갔을까.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1853~90)가 세상을 떠난 뒤 ‘해바라기’를 본 동료 화가들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만년을 함께 보냈던 고갱의 표현대로라면 반 고흐는 “해바라기 화가”였으며, 해바라기는 곧 그 자신이었습니다. 반 고흐는 왜 그리도 해바라기를 그렸을까요. 그의 해바라기는 뭐가 달랐기에 저런 평가를 받았을까요. 그가 남긴 해바라기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반 고흐 특별전 굿즈를 구독자 5분께 보내드립니다. 이벤트는 15일까지 이어갑니다. 기사 맨 아래 구글폼 링크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커다란 해바라기를 그린다고 네가 놀라지는 않겠지. 캔버스 세 개를 동시에 작업 중이야… 매일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림을 그리고 있어. 꽃은 빨리 시들어버리는 데다 단번에 전체를 그려야 하기 때문이야(1888년 8월 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남프랑스 아를에서 한창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반 고흐는 득의양양했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 만에 해바라기 네 점을 완성했습니다. 2년 전 파리 몽마르트르 기슭에 자라던 해바라기를 그린 게 시작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물이 오른 건 아를에서였습니다. 이 중 노란 바탕의 ‘해바라기 열다섯 송이’(*그림 제목이 모두 ‘해바라기’라 꽃송이 개수로 구분하겠습니다)는 지금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아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는 것들
📌해바라기 그림 속 ‘바니타스’, 생의 헛되고 유한함
📌히로시마에 원폭 떨어지던 날 불타버린 해바라기
📌2차대전 말 나치에 폭격 맞을 뻔한 해바라기
📌도쿄의 보험사 사옥 꼭대기 층 방탄유리 속 해바라기
🌻화가들의 화가 반 고흐: 마티스도, 호크니도 해바라기 그렸다.
맨 왼쪽 아래 꽃받침을 드러내며 막 피어난 해바라기를 시작으로 활짝 핀 일곱 송이, 시들어 가는 해바라기, 그리고 가운데 꽃잎이 모두 떨어져 씨앗으로 변해 가는 해바라기까지 15송이 해바라기를 풍성하게 그렸습니다. 한 화면에 해바라기의 여러 시간이 보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도 연상됩니다. ‘바니타스’는 ‘헛됨’ ‘공허’를 뜻하는 라틴어. 성경의 전도서 속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라는 구절로 유명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탁자 위에 모래시계, 썩은 과일, 두개골 등을 배치해 생의 유한함을 강조했습니다.
해바라기는 남프랑스 사람들이 음식을 저장해 두는 소박한 도기 항아리에 꽂았습니다.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보잘것없는 풍경에 눈을 돌린 반 고흐답습니다. 우아한 꽃병과 함께한 정물화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테오에게 마네의 모란 정물화 얘기를 합니다. ‘기술의 단순성’이라고 칭찬한 그 그림에서도 꽃과 정물은 한껏 우아하고 화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