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응 작가의 대표작 ‘바람의 정원Ⅰ’, ‘바람의 정원Ⅱ’엔 그의 자아가 들어가 있다.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프랑스 노르망디의 작업실 옆에 가방을 든 작은 신사가 서 있다. 장욱진의 자화상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다. 길가엔 반 고흐가, 나무 아래엔 겸재 정선이, 담벼락 옆엔 모네가 자리한다. 작가가 존경한 인물들을 통해 작가의 자아를 표현했다.
수원 행궁동의 예술공간 아름과 실험공간 UZ서 박찬응 작가의 초대전 ‘표류_감각_아카이빙’이 열리고 있다.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그 인연으로 수원에서 전시를 열게 된 작가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그린 작품들을 내놓는 자리다.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2~3개월 머물며 작업실과 주변 풍경, 해변가 등을 그렸다. 최근 작업하고 있는 수묵이 접목된 작품들도 내놓는다.
전시의 주제는 ‘표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정처없이 떠도는 ‘표류’ 상태에 있는 인류처럼 작가 자신도 제주, 신안, 옥천, 의왕, 프랑스 노르망디, 페깡, 남프랑스 뚜르즈 가베르니 등을 표류한다. 코로나19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사람이 없듯이 작가는 그 모든 상황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다.
주요 작품들은 이 시기 프랑스 노르망디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바람의 정원’ 시리즈에선 작업실과 주변 풍경을 그렸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하늘 아래 높은 나무들은 줄지어 서 있고 밀밭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초대의 문’에서는 분홍색 작업실 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가 있다. 작업실 벽을 탁본해서 그린 작품도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풍경에 대한 감각은 작업실에서 10분가량 덜어진 떼깡의 해변가로 이어진다.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노르망디 해협은 석회석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정면에서 바라보거나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림들로 작가의 관찰을 담는다. 작가가 살면서 가장 절망스러웠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표현한 그림들이다. 해결방법도 없고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낭떠러지로 전달했다.
작가의 ‘표류’는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유년시절과 상상을 넘나들며 자신을 찾아간다. 떼깡의 해변을 그린 그림 밑에는 최인훈의 ‘바다의 편지’가 방석과 함께 놓여 있어 그가 추구한 방향성을 가늠하게 한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소설 속 구절 중 주인공의 유해가 이리저리 나뉘어 있는 장면을 낭독하며 표류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표류하는 작가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우리는 살면서 정체성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작가에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내 자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아빠로서, 누구의 아들로서, 친구로서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하나의 정체성으로 못박을 수 없다. 할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은 작가는 끊임없이 나아간다.
작가는 내년 프랑스 빨루엘에 있는 르꼬르드페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서양화가인 박 작가가 수묵화를 접목시켜 발전시킨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그의 표류는 계속된다.
이외에도 지하 공간인 실험공간 UZ에는 박 작가가 2024년 발간한 그림책 ‘소년, 날다’ 원화들을 볼 수 있다.
박찬응 작가의 초대전 ‘표류_감각_아카이빙’은 15일까지 계속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