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사실 저 사장입니다”…몰래 한 겸직의 최후

2025-11-21

퇴근 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배달 플랫폼을 켜거나 스마트 스토어를 관리하는 직장인은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여전히 ‘본업 충실 의무’를 강조합니다. 개인 시간 활용이라고만 보기도 어렵고, 회사 통제라고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겸직이 적발됐을 때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징계·해고의 적정성을 판단할까요. 흥미롭게도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1 “택시 매출은 바닥인데, 대리운전 수익은 쏠쏠?”…정당 해고

택시 기사 A씨는 회사 몰래 대리운전 기사로 활동했습니다. 회사의 취업규칙에는 “회사의 승인 없이 타 직종에 종사하며 영업 행위를 했을 때”를 해고 사유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A씨가 겸직 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불성실하게 근무했다며 그를 해고했습니다.

A씨는 억울해했습니다. “생계가 어려워 어쩔 수 없었고, 회사가 근무 형태를(1인 1차제→2인 1차제) 갑자기 바꿔서 일을 제대로 못 한 것뿐”이라며 소송을 냈습니다. 또한 “사납금(운송수입금 기준액) 미달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여객자동차법 위반”이라는 법적 논리도 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먼저 본업 근무시간이 ‘1시간’으로 추락했다는 점입니다. 해당 기사의 택시 운행 시간은 월 57시간에서 대리운전 후 월 1시간 56분으로 급감했습니다. 법원은 “단순한 겸직을 넘어, 본업인 근로 제공 의무를 현저히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쟁 관계 영업으로 인한 신뢰 훼손은 물론, 피로 누적으로 승객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시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누47512: 확정).

#2 “규정은 있지만 교육은 없었다”…해고무효 된 수영강사

공공기관 소속 수영강사 B씨는 약 2개월간 인근 타 지자체 수영장에서 강사로 겸직 근무를 했습니다. 회사의 인사규정에는 명백히 ‘겸직 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회사는 이를 근거로 B씨를 해고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고의성 입증의 실패’였습니다.

법원은 회사가 부서장들에게 복무 관리 지침을 내린 적은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공무직 강사 B씨에게 해당 규정을 명확히 교육하거나 전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근로자가 규정을 어렴풋이 알았거나 잘 몰랐다면 이는 과실일 뿐, 해고에 이를 정도의 ‘고의적 비위’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부 감사부서조차 당초 ‘정직’ 수준의 징계를 건의했음에도 회사가 가장 무거운 ‘해고’를 택한 것은 징계 재량권 남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하지 말라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냅다 해고하는 것은 과하다”는 논리입니다(서울행정법원 2023구합84069: 확정).

회사가 아무리 엄격한 취업규칙을 가지고 있더라도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으로 교육하고 주지시키지 않았다면 그 책임을 온전히 근로자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공무직이나 현장직 등 상대적으로 규정 접근성이 낮은 직군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공문 발송을 넘어선 실질적인 교육이 필수적입니다.

#3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했다”…유튜브를 선택한 베테랑 기자

반면, 28년 차 기자 C씨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는 회사의 허락 없이 외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고, 아예 다른 주식회사의 ‘등기 임원(지배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회사는 “방송 활동과 등기 임원직을 정리하라”고 공식적으로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C씨는 이를 무시하고 활동을 강행했고, 심지어 자신의 개인적인 사업 취재를 위해 본사 기자 명함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회사는 그에게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법원은 이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C씨의 행위는 단순한 부업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C씨가 ①회사의 명시적인 중단 요구를 거부했고 ②경쟁이나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타 회사의 임원으로 등기됐으며 ③회사의 자산인 ‘회사명(브랜드)’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이는 근로계약상 가장 중요한 ‘성실의무’와 ‘신뢰’를 저버린 행위이므로 엄중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본 것입니다(서울행정법원 2022구합67388: 확정).

전기차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광고 수익과 추천인 코드로 수억원대 혜택을 본 공공기관 교육원장 D씨의 해고도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수익의 다과를 떠나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자산을 유용하면 징계받을 수 있습니다(전주지방법원 2021가합5781: 확정).

#4 “이름만 걸어둔 감투는 괜찮다”…해고 무효된 공기업 직원

공기업 직원 E씨가 허가 없이 지역축제위원장직을 겸직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사안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민사와 행정 소송 모두에서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핵심은 ‘실질적 활동의 부재’였습니다. 코로나19로 3년간 축제가 열리지 않아 위원회가 구성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직원이 연 1회 시청에 보조금 서류를 제출한 행위는 단순한 행정 절차일 뿐 본업에 지장을 주는 ‘계속적인 영리 업무’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수익도, 실체도 없는 ‘명목상 직함’만을 근거로 실제 근무 태만 여부를 따지지 않고 내린 징계는 사측의 재량권 남용이라는 것이 판결의 요지입니다(서울행정법원 2023구합70268: 확정).

사례들을 통해 겸직에 대해 법원이 판단할 때 중요하게 보는 기준을 정리하면 ▲본업 수행에 끼친 영향 정도 ▲겸직 활동의 반복성·고의성 ▲취업 규칙상 금지 여부 및 규정의 명확성 ▲회사 이익 침해 또는 침해 위험의 실재성 ▲동종 업계·경업(경쟁업무) 요소 존재 여부 ▲조직 신뢰·업무 기강에 주는 파장 ▲근로시간 내 행위인지, 근로시간 외 활동인지 ▲회사가 공공기관인지 여부 등으로 종합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법원은 “겸직을 했는가”보다는 겸직이라는 선택이 회사의 정당한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활동이나 이득이 없는 경우에는 해고할 수 없습니다(실질적 겸직). 그리고 “명백히 규정에 있으니 징계한다”는 태도보다는 해당 겸직이 기업 질서나 업무 성과에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입증해야 하고, 징계에 앞서 겸직 허가 기준을 명확히 하고 충분한 사전 고지 및 교육을 수행해야 합니다.

한편 근로자는 근로시간 외 활동이더라도 본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고, 부업이 회사 업무와 충돌할 수 있다면 사전 신고가 안전하며, SNS·브랜드 운영 활동은 회사 이미지나 경쟁성까지 염두에 둬야 합니다.

법원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것이 성실한 근로자라는 직업인의 기본 책무를 덮을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능력 있는 N잡러는 본업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 신뢰를 잃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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