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불안 속 88% 급증한 금 보관 수요
"은행 못 믿는다"… 실물 자산에 몰리는 자산가들
금값 고공행진… "5천달러 간다" 전망도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지정학적 불안과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 세계 초고액 자산가들이 실물 금(金)을 해외 금고로 옮기는 움직임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동양의 제네바'로 불리는 싱가포르가 새로운 금 피난처로 부상하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 인근에 위치한 6층짜리 고급 금속 저장시설 '더 리저브'는 최근 들어 전례 없는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은 철문 뒤에 15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금·은괴를 보관하고 있으며, 수십 개의 개인 금고와 3층 높이의 초대형 보관 창고를 갖췄다.

◆"세계가 요동친다"… 88% 급증한 금 보관 수요
'더 리저브'를 운영하는 창업자 그레고어 그레거슨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금·은 보관 주문은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 곳에서 금과 은괴 등 귀금속 판매량은 200%나 폭증했다. 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90% 이상의 신규 주문이 해외 고객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다"며 "금속을 안전한 관할권에 두고자 하는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은행 못 믿는다"… 실물 자산에 몰리는 자산가들
업계에서는 초부유층이 ETF 같은 '종이 금'이 아닌 실물 금괴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해졌다고 분석한다. 그레거슨은 "실물 보유는 은행 리스크, 특히 거래 상대방이 갖고 있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자산가들 사이에선 종이금 보유나 공동 금 보유 지분보다는 특정 실물 금괴를 직접 보유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세계금 위원회(WGC)의 존 리드 수석 마켓전략가는 "일부 금 보유자는 은행 시스템 외부에서 금을 보관하길 원한다"며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 저하가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 왜 하필 싱가포르인가?
업계에서는 싱가포르를 금 보관지로 선호하는 이유로 ▲정치·경제적 안정성 ▲강력한 법적 보호 ▲주요 환승 허브라는 접근성 등을 꼽는다. 귀금속 거래업체 MKS 팜프의 닉키 쉴스는 "싱가포르는 '동양의 제네바'로 불리며 안정적인 국제 금융 허브로 신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 기반 컨설팅 업체 '밀리어네어 마이그런트'의 제레미 세이버리도 "싱가포르는 물리적 접근성과 글로벌 환승 허브라는 점에서 스위스를 제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 금값 고공행진… "5천달러 간다" 전망도
금값은 최근 몇 달간 사상 최고가를 경신해 왔다. 미·중 무역 긴장과 미국발 자산 매도세가 맞물리며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하게 작용했다. 최근 다소 진정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 온스당 5,000달러까지 상승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제 금 현물가는 온스당 3,346.32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금 수요는 단순한 가격 상승 기대를 넘어, 자산 보호 수단이자 신뢰의 상징으로서의 금(金)에 대한 회귀"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골드 러시 2.0'이 시작된 셈이다.
koinw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