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반구천 암각화는 ‘국보 중의 국보’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예술 작품은 드물죠. 중요한 것은 제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반구천 암각화의 최초 발견자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한국미술사연구소장)는 3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단단한 목소리로 보존의 중요성을 먼저 강조했다.
문 교수는 지난 반세기 동안 반구천 암각화라는 유산과 함께 걸어왔다. 1970년 당시 스물아홉 살의 젊은 연구원이 우연히 마주한 그 암벽의 문양은 그의 삶 전체를 바꿔놓았다. 이후 반구천 암각화는 한국 선사시대 연구의 좌표가 됐고,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문 교수는 반구천 암각화 발견에 대해 “지도에도 안 나오는 오래된 사찰 반고사의 흔적을 찾으러 울산 반구천 계곡에 갔다”며 “그런데 그곳 마을 사람들로부터 계곡 절벽에 이상한 그림 같은 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는 동국대박물관 연구원 신분으로 반구천을 방문했다. 신라시대의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반고사의 흔적 조사였지만 뜻밖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 문 교수는 “암각화를 처음 봤을 때 기하학무늬 몇 개와 이상한 문양 같았다”며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단순한 낙서가 아니어서 지속적인 추가 조사를 했고 1971년에 울산 대곡리와 천전리 두 곳에서 암각화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발견된 대곡리 암각화에는 고래·사슴·멧돼지·사람 등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대부분 사냥 장면이었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타원형과 사각형의 기하문과 고문자로 해석되는 기호들이 가득했다. 그는 “대곡리 암각화는 신석기인들의 삶과 정신을 보여주는 창”이라며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사냥꾼의 시선, 공동체의 염원, 자연과의 공존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고 소개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세계적으로도 해양 동물과 육지 동물이 함께 묘사된 선사시대 암각화는 드물다. 대곡리 암각화를 발견한 후 그는 시베리아·몽골·스페인·미국 등의 암각화 자료를 섭렵하면서 비교 연구를 진행했고 대곡리 암각화의 예술성과 독창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천전리 암각화에 대해서도 문 교수는 각별함을 나타냈다. 그는 “타원형·직선형·사각형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문자의 원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 암각화를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도 청동기시대에 문자와 같은 소통 체계가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분명한 쾌거지만 문 교수는 “보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지금 대곡리 암각화는 댐으로 인해 물에 잠겨 있는데 겨울철 수위가 낮아질 때만 잠깐 보인다”며 “계절과 기후에 따라 암각화가 갈라지고 떨어지고 있고, 비와 홍수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시급하다. 지금도 균열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고 마냥 기뻐하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이라도 국가유산청과 울산시·학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종합적인 보존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구천 암각화와 같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는 것 외에도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암각화를 가까운 거리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안전한 구조물을 설치하고 실물 크기 모형도 만들어 누구나 만져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50여 년 전 절벽에 남겨진 그림 하나가 문 교수의 삶을 바꿨고 그가 남긴 연구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기반이 됐다. 문 교수는 “세계의 주목은 이제 시작일 뿐 진짜 과제는 이제부터”라며 “반구천 암각화는 우리 조상들의 목소리이다.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문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연구자들은 주관이 너무 강한 경우가 많아 하나를 보면 그 하나에만 집착하기도 한다”며 “유적은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봐야 하고 미술사·고고학·인류학·지리학까지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