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사는 언제나 평가당하는 존재다. 시장은 끊임없이 묻는다. “이 회사는 얼마나 벌 수 있는가?”, “내가 투자한 이 주식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때 가장 신뢰받는 대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숫자'다.
기업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다양하다. 어떤 기업은 비전과 진정성을 내세우고, 또 어떤 기업은 슬로건과 브랜드 서사를 강조한다. 하지만 IR(투자자 대상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는 결국 '수익 가능성을 수치로 제시하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보는 것은 말이 아닌 수치다. 애널리스트는 재무제표와 실적 추정치를 근거로 목표주가를 매기고, 기관은 그 숫자를 기준으로 편입 여부를 판단한다. 기업의 미래가 숫자로 예측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비전은 시장에 도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IR은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수익의 흐름을 설계해 제시하는 전략적 행위다. 그 수치들은 일종의 계산서다. “이만큼 벌 수 있다, 그러니 이만큼 가치를 매겨달라.” 상장사는 시장 앞에서 숫자로 스스로를 가격 매기는 존재다.
최근 바이오 대표기업 알테오젠은 이러한 IR 전략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았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 바이오 기업인 이 회사는 2025년 1분기 매출 837억 원(+140%), 영업이익 610억 원(+254%), 순이익 830억 원(+299%)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기술이전 계약에 따른 로열티 구조, 실적 턴어라운드 시점, ALT-B4 기반 글로벌 기술이전의 연간 수익 가능성 등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해 시장에 설명했다.
그 결과 증권사는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며 목표주가를 70만 원대로 상향했고, 알테오젠은 '꿈을 말한 기업'이 아니라 '수익을 제시한 기업'으로 재평가됐다. 말이 아닌 숫자가 신뢰를 이끈 셈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 Farmer Mac(Federal Agricultural Mortgage Corp, 티커: AGM)은 배당 중심의 장기투자형 IR 전략으로 유명하다.
2025년 1분기 기준 순이자수익은 9090만 달러(+5% YoY), Core Earnings는 4600만 달러, 주당순이익(EPS)은 15.78달러에 이르렀고, 자산 건전성 지표인 Tier 1 자기자본비율은 13.9%에 달한다. 여기에 연간 배당은 6.00달러, 배당 수익률은 약 4.6%. 무엇보다 14년 연속 배당금 인상이라는 이력은 시장에 강력한 신뢰 시그널을 준다.
Farmer Mac은 “이익이 실제로 배당으로 돌아온다”는 숫자 커뮤니케이션을 반복하면서 기관과 장기 투자자를 끌어안았다.
이처럼 IR의 진정성은 감정이 아니라 수치로 판별된다. 특히 시장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구체적인 실적 전망과 손익 모델, 매출 인식 시점에 대한 정교한 수치 설계가 더 중요해진다. 일시적인 부진은 숫자로 설명되면 시장은 기다려준다. 하지만 숫자 없이 말만 되풀이되면, 시장은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순히 숫자를 나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수치들이 시장의 흐름과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제시되었는지가 IR 전략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숫자는 기업의 자존심이 아니라, 시장과 맺는 약속이다. 측정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수익 흐름을 설계해, 수치로 설명해야 한다. 여기에 체계적인 프레임의 스토리까지 더해지면, 비로소 유통시장에 단단한 뿌리를 내릴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문경미 ㈜더컴퍼니즈 대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chloemoon@thecompanies.co.kr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