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얼려 만든 호텔까지 있다…8월에도 오로라 뜨는 이곳

2024-09-11

70년 만의 폭염이라고 했던가. 허구한 날 열대야로 잠을 설쳤던 8월 하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가방을 꾸렸다. 지구촌 전체가 쩔쩔 끓었던 여름이어서 피서 기분을 내려면 멀리, 아주 멀리 도망쳐야 했다. 그렇게 북극권 여행이 시작됐다. 북위 70도 언저리에 걸친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북쪽 지역을 찾아 들어갔다. 유럽 북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북쪽 끄트머리에 붙은 오지 마을에서 비로소 징글징글했던 여름과 작별했다. 낮에는 긴팔옷 껴입고 툰드라 초원을 거닐었고, 밤에는 방한 장비로 무장한 채 눈으로 지은 호텔에 몸을 뉘었다. 스노 호텔 얼음 침대에서 잠을 청하다가 새삼 인간은 간사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더위에 잠을 설쳤던 동양의 여행자는 그 밤 너무 추워서 잠을 설쳤다.

8월의 오로라

비행기를 두 번 타고 들어간 핀란드 북부 내륙도시 이발로(Ivalo)는 우리의 경북 영양이나 봉화처럼 꼭꼭 숨은 두메다. 위도를 찾아보니 68.66도. 아주 오랜만에 북극권에 들어왔다.

북극권(Arctic Circle)은 북쪽 지역을 통칭하는 일반명사가 아니다. 북위 66.33도 이상 지역을 뜻하는 기상용어다. 북극권의 기준은 태양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정오에 해가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자 낮이 가장 긴 하짓날 자정에도 해가 있는 가장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하여 여름의 북극권은 좀처럼 해가 지지 않는다. 하지가 한참 지난 8월 말이었는데도 이발로의 하늘은 오후 10시가 넘어야 어두워졌고 새벽 2시가 넘어가자 희붐해졌다. 낮이 길어도 덥지는 않았다. 이발로 공항에 내리자마자 한 행동은 외투를 꺼내 입은 일이었다. 한낮이어도 10도 정도였다.

소나무와 자작나무로 빽빽한 숲 한가운데 호텔이 있었다. 윌더니스 호텔 무오트카(Wilderness Hotel Muotka). 이름에 ‘야생(Wilderness)’이 들어간 호텔이어서 객실이 모두 오두막이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천정이 유리로 돼 있었다. 바깥에서 침대가 훤히 보였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 궁금했는데, 세상에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 오로라를 올려보다 잠드는 호텔이라니.

실제로 첫날 밤 오로라가 나왔다. 아니 나왔다고 한다. 새벽 1시쯤 오로라가 떴었다고 이튿날 아침 호텔 직원이 사진을 보여주며 으쓱거렸다. 8월의 오로라라. 북극권에서도 겨울에만 나타나는 줄 알았는데, 이발로에서는 해가 없고 구름도 없으면 오로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정이 안 돼 곯아떨어진 동양의 여행자는 8월의 오로라는 꿈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째, 잠결에 너무 환하다 싶었다.

핀란드는 역시 사우나의 나라였다. 호텔은 물론이고 식당도 사우나를 두고 있었다. 핀란드 여행 책자를 보니 인구 540만명의 나라에 300만 개가 넘는 사우나가 있단다. 사우나(Sauna)는 핀란드어다. 핀란드 현지 여행사 ‘라플란드 노스’의 한나 코우리 대표가 “사우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핀란드어”라고 말했다. 찜질방을 사랑하는 한국의 여행자도 핀란드 사우나를 즐겼다. 뜨겁게 달군 돌무더기에 물을 끼얹어 증기욕을 즐기는 방식이 불가마를 통째로 달구는 한국식과는 달랐지만, 개운해지는 기분은 같았다. 사우나 온도가 80도 가까이 됐어도 뜨겁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사우나에서 생잎 달린 자작나무 가지로 제 몸을 때리는 체험은 분명 색달랐다. 그 유명한 껌에도 들어가는 자작나무가 몸에 밴 나쁜 성분을 빼주고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된다는데, 효과는 모르겠고 재미는 있었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사우나에서 달궈진 몸을 강물에 뛰어들어 식히는 순서였다. 겨울이 아니어서 얼음을 깨고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툰드라 초원을 흐르는 강물은 8월에도 충분히 차가웠다.

눈으로 지은 호텔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국경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해외여행에 당연히 요구되는 출국과 입국 절차가 유럽연합(EU)으로 통합된 국가의 국경을 넘을 때는 통째로 삭제된다. 그 귀찮고 성가신, 때로는 약간의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의식에서 해방된다는 것만으로도 유럽 여행은 한국의 여행자를 들뜨게 한다. 여정 사흘째, 이발로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쯤 지났으려나. 차창 밖의 풍경은 딱히 달라진 게 없는데, 1시간이 뒤로 갔다. 노르웨이로 넘어온 것이다. 노르웨이가 핀란드보다 1시간 늦다.

사실 내가 여행한 스칸디나비아반도 북쪽 지역은 이름이 따로 있다. 라플란드(Lapland). 이 지역 원주민 라프(Lapp)족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 알래스카 원주민의 원래 이름이 에스키모가 아니었듯이, 라플란드 원주민의 원래 이름도 라프족이 아니었다. 그들이 스스로 부르는 이름은 ‘사미(Sami)’다. 현재 순수 혈통은 7만명 정도만 남았다는데, 고유 언어를 지키며 산단다. 사미족 이름은 낯설어도 그들의 모습은 눈에 익다. 채도 높은 붉은 색 모피를 입고 눈 덮인 자작나무숲을 순록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봤던 북쪽 나라 사람이 사미족이다.

사미족 박물관에서 흥미로운 동영상을 봤다. 사미족 할머니가 소나무 껍질을 벗기더니 껍질 안쪽의 부드러운 부위를 떼어내 잘게 부순 뒤 입 안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우리도 옛날에 그렇게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었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했던 건 비단 우리만의 서러웠던 시절은 아니었다. 아무튼, 핀란드에서 노르웨이로 국경을 넘었어도 여전히 이 땅은 라플란드다. 현재 라플란드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러시아 4개 나라로 나뉘었다.

뷰고니스(Bugones)라는 작은 갯마을에 도착했다. 핀란드 위쪽이어서 위도가 더 올라 북위 70도에 도달했다. 뷰고니스에서 보이는 바다가 북극해와 맞닿은 베린츠해다. 뷰고니스 아랫마을 시르케네스(Kirkenes)는 러시아 국경 마을이다. 보트를 타고 피요르(fjord)를 따라 러시아 국경까지 다가갔다. 러시아는 유럽연합이 아니어서 국경이 표시됐다. 그렇다고 철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2m쯤 거리를 두고 돌기둥 2개가 서 있었다. 이쪽 기둥이 노르웨이, 저쪽 기둥이 러시아, 기둥 사이는 우리식으로 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에서 두어 발짝 더 떼 국경을 넘어볼까 했었는데, 가이드가 질색하고 말렸다. CCTV가 있어 무단으로 국경을 넘으면 나중에 벌금을 물린단다.

이 바다에서 킹크랩이 올라온다. 원래 킹크랩은 러시아 동부 해안에서만 났는데, 1970년대 러시아가 서부 해안에서 양식에 성공한 이래 국경 너머 노르웨이 바다에서도 킹크랩이 나온단다. 노르웨이 킹크랩은 서울에서 먹었던 녀석보다 훨씬 컸다. 집게 다리를 편 길이는 1m50㎝나 됐고, 무게는 10㎏이 넘었다. 놀랍게도 또는 아쉽게도, 노르웨이 사람은 킹크랩을 다리만 먹었다. 다리는 잘라내 찌고 몸통은 바다에 던져버렸다. 킹크랩이 워낙 커서 다리 서너 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북극권으로 떠난 피서 마지막 밤. 마침내 스노 호텔에서 하룻밤을 잤다. ‘스노 호텔 시르케네스’는 유럽에서 하나뿐인 여름에도 문을 여는 스노 호텔이다. 여름에도 호텔을 열기 위해 겨울마다 25t의 얼음과 15000㎥의 눈을 비축한단다. 호텔에 입장하기 전, 프런트 직원이 칫솔 대신 침낭을 줬다. 호텔 안은 이글루 같았다. 눈을 얼려 호텔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호텔 온도는 영하 2∼3도. 객실에는 얼음을 깎아 만든 침대가 놓여 있었다. 얼음 침대에 눕기 전 아이스바에서 얼음 잔에 위스키를 따라 연거푸 마셨다. 체온을 한껏 올리고 침낭에 들어갔지만,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입김이 새어 나왔다. 이튿날 눈 뜨자마자 사우나로 달려갔다. 밤새 추위로 굳은 몸이 비로소 풀렸다.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핀란드 헬싱키까지 비행기로 12∼14시간 걸린다. 헬싱키에서 이발로까지 국내선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이발로에서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 북단의 시르케네스까지는 자동차로 약 4시간 거리다. 핀에어가 인천∼헬싱키 구간과 헬싱키∼이발로 구간을 매일 운행한다. 내년 여름에는 이발로∼시르케네스 구간도 운행할 계획이다. 핀란드와 한국의 시차는 한국이 6시간 빠르다. 핀란드는 유로를 쓰지만, 노르웨이는 여전히 노르웨이 화폐 ‘크로네’를 쓴다. 9월 현재 1유로 약 1485원, 1크로네 약 125원. 북유럽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받았다지만, 8월 하순 평균기온은 6∼14도였다.

핀란드ㆍ노르웨이=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