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 '관월당'이 100여 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이는 일본 내 소재한 한국 전통 건축물 전체가 원형을 유지한 채 국내로 돌아온 첫 사례이다.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조선 왕실 사당 관월당, 100년 만에 일본에서 귀환'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을 비롯해 사토 다카오 고덕원 주지, 배지영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지원활용부 책임, 손현숙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 이경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 등이 참석했다.
국가유산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지난 23일 관월당의 소장자인 일본 고덕원과 약정을 체결, 고덕원의 보존·복원을 위해 해체하고 한국에 이송한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았다.

이날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은 2025년에 의미 있는 행사를 진행하게 돼 뜻 깊게 생각한다. 오늘 소개해드릴 유산은 100여 년 전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된 목조건축물인 관월당"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귀환은 일본 내 소재한 한국 전통 건축물 전체가 원형을 유지한 채 국내로 돌아온 첫 사례로 의미가 깊다. 현재까지 조사에 따르면 관월당은 간결한 목가구 구조 속에서 화려하고 격식 있는 왕실 관련 사당 건축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청장은 "'관월당'이 국내에 귀환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접 교류가 불가능한 시기가 있었고, 이 사업에 대해 어려움도 컸다. 이후 사토 다카오 스님과 꾸준한 만남, 서신을 통해 신뢰를 구축했고 안전상태 진단 등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아 어제 드디어 기증 약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최 청장은 "관월당 귀환은 단순 반환을 넘어 국가 간 신뢰이다. 사토 스님의 결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토 스님은 관월당을 단순히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차원이 아닌 관월당의 가치와 역사적 맥락을 온전히 회보하기 위한 조사, 연구를 위해 해체와 운송까지 모든 책임을 함께 맡아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어 "현재 관월당 부재는 파주의 전통건축수리기술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가치가 널리 공유될 수 있도록 활용 기회도 마련할 것"이라며 "해외 흩어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정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증자인 사토 다카오 주지는 이번 관월당 귀환에 있어 해체부터 운송까지의 비용을 모두 부담했다. 이와 관련해 사토는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유산청으로부터도 해체나 운송에 있어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관월당'은 100년 정도 일본에 있어서 애착이 있던 건물이었기에 무사히 한국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답했다.
사토 다카오는 "100여 년 전 일본으로 온 관월당을 잘 보관하고 있었다. 제가 주지로 취임한지 20여 년 전에 관월당을 어떻게 한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있어서 관월당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라며 "이번에 국가유산청장과 국외소재문화재단을 비롯해 많은 한국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뜻 깊은 관월당을 한국으로 돌려드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 '관월당'으로 불리는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지닌 목조 건축물로, 맞배지붕 단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왕실 관련 건물로서 당초 서울 지역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야마이치 증권의 초대 사장인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도쿄로 옮겨진 관월당은 1930년대 스기노 기세이가 가마쿠라시의 고덕원이라는 사찰에 기증하면서 고덕원 경내로 이전돼 해체 전까지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처로 활용됐다.
배지영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지원활용부 책임은 "원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소장처인 고덕원에서 관월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관월당은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에 위치해 있었고, 원 소재지는 서울로 추정된다. 관월당이 일본에 간 이유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스기노 기세이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귀환 경과에 대해선 "2009년 한·일 불교문화교류 협의회에 협상 지원을 요청했으나 이듬해 협상 중 교섭이 중단됐다. 그리고 2019년 고덕원 측이 문화재청에 보존 관련을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2022년 고덕원 주지가 협상을 재개했다"라며 "관월당 보존상태를 진단하면서 2024년 국가유산청과 고덕원 간 관월당의 보존처리 상호 교류 및 협력을 위한 협략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배 책임은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관월당을 해체했고, 11월에는 기와 및 석재를 국내에 반입했고 2025년 목재가 국내에 반입됐다"고 덧붙였다. 관월당 부재는 석재 및 철물 8점 401점, 기와 12점 3457점, 목재 74건 1124건이 옮겨졌다.
분석 결과를 종합적으로 볼 때, 관월당은 비교적 간단한 목가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내부에는 화려하고도 격식 있는 의장을 추구한 18∼19세기경의 왕실 관련 사당 건축물로 추정된다.
단청에는 여러 층위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사용된 문양과 안료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 다시 채색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각 층위의 단청들 모두 구름 모양의 운보문이나 '卍'자와 같은 형상의 만자문 등 다채로운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건물의 높은 위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문양과 색채에서도 궁궐 단청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손현숙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 "관월당은 단청에 의해 얼마나 귀중한 유산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선대 단청은 18세기 후기부터 19세기 초기의 왕실 사당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며 "후대단청은 19세기 후기 궁궐 및 왕실 관련 제례용 건축 단청의 특징이 집합된 사례이다. 두 식의 왕실 건축 단청의 면모와 변화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앞서 관월당은 2010년에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일한불교교류협회 측과 한국 귀환을 추진했으나 중단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관월당이 궁궐, 즉 경복궁에 있었던 건물이란 견해도 있으나 정확한 위치나 건물 용도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진 바 없다.
이경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부교수는 "기존에 관월당 원 위치에 대해 경복궁 안에 건축물이라 추정이 되어 왔다. 저희도 이번에 연구를 진행하면서 관월당이 경복궁 안에 건물일 가능성, 이외 다른 궁궐일 가능성에 대해 검토를 했다. 그 결과, 관월당과 같은 규모와 격식의 건축물을 찾을 수 없어서 궁궐 내 건축물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축적 가치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해체할 때 고대한 부분이 건축물 안에서 상량문이 나오길 바랐으나,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연구를 진행을 해보고, 이건축물의 가치는 배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구 성과를바탕으로 말씀 드리자면 규모는 작지만 왕실의 격식과 화려함을 갖춘 사당 건물이라고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관월당이 원래 있었던 곳으로 현재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 광장이 된 순정효황후 본가 터(조선식산은행 사택 터), 통의동 일대의 창의궁 터(동양척식은행 사택 터), 과거 월궁이라 불렸던 월성위궁 터 등 3곳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관월당의 터를 송현동이라고 추정한 이유가, 이 건물이 있던 토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담보로 잡히게 된다. 조선식산은행에 담보로 잡히게 되면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재단은 "향후 '관월당'의 원래 명칭과 원 위치, 배향 인물 등을 밝히기 위한 학술 연구를 지속할 예정"이라며 "또한 관월당은 국내 전문 인력에 의한 수리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