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존법 찾아라] AI는 'K-콘텐츠' 비밀병기가 될 수 있을까

2025-05-17

[비즈한국]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미국 빅테크 독주 속 중국은 방대한 지원과 인력을 토대로 판을 흔들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 1위의 ‘IT 강국’ 한국은 AI 기술 분야에서 일찌감치 ‘2군’으로 밀려났다. 거대 자본과 데이터를 앞세운 선도국의 각축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AI 스타트업은 틈새시장을 노려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주요 IT 기업들은 AI를 활용한 독자적인 비즈니스 모델 찾기에 분주하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전쟁에서 살 길은 어디에 있을까. 혁신의 최전선에 선 우리 기업들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는 영화, 가상 인간, 디지털 콘텐츠 등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내놓은 새 지침은 단적인 예다. 주최 측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작품도 오스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4월 발표했다. 후보 지명과 수상자 선정에 있어 AI와 디지털 도구의 사용 여부를 문제 삼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스카상이 영화 산업과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산업의 경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온 한국이 AI 기술을 도구로 쥐면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 한국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제한된 예산과 인력 자원으로 콘텐츠 산업을 끌어왔다. 업계는 AI가 시간과 인력, 비용을 줄이면서 콘텐츠의 품질은 높이는 ‘기술적 지렛대’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자체 IP(지식재산)로 수익을 내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미 AI가 제작 방식 전반을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특화 기술을 제공하는 B2B 모델로서 비전이 있다는 전망이다.

#국제 AI 무대 오르는 최초의 ‘버추얼 휴먼​ 걸그룹

프롬프트(지시어)로 사람들이 애정을 쏟는 아이돌과 영화를 만든다. 더 이상 공상이 아닌 현실이다. 11인조 AI 가상 걸그룹 이터니티(IITERNITI)는 지난달 말 열린 42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공식 인증하는 이 영화제의 올해 주제는 ‘시네마&사운드’였다. 이터니티는 스크린으로 개막식 현장에 등장한 데 이어, 영화제에서 기존에 발매한 ‘WEN MOON’ 뮤직비디오를 3D 변환 방식으로 재탄생시켜 공개했다.

이터니티 멤버들은 기본적으로 버추얼 휴먼이다. K팝 아이돌 변천사를 기반으로 학습된 기술이 적용됐다. 생성된 얼굴에는 TV 생방송 품질 수준의 비디오 합성 기술이 구현됐다. 다양한 학습 데이터를 공개적으로 수집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기술력 외에 시장의 수요도 고려됐다. 회사는 다수의 이미지 후보군 중 온라인 투표를 통해 최종 비주얼을 선정했다.

이터니티의 개발사이자 소속사인 펄스나인은 AI 그래픽 전문 스타트업이다. 이터니티는 애초에 아이돌로 기획된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지능형 콘텐츠 제작 과정을 거쳐 탄생한 팀이다. 가상 아이돌인 이터니티의 무대나 소통 등의 활동은 모두 회사의 손을 거친다.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솔루션 기반이다. 뮤직비디오나 출연 영상 제작 시 야외 로케이션 촬영을 생략하고 영상 버추얼 제작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촬영의 물리적인 한계나 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섬세한 동작 연기가 중요한 파트는 스튜디오에서 대역이 직접 촬영한다. 그 후 실시간 얼굴 변환 기술을 적용해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형태다.

이터니티는 현재까지 5개의 싱글을 냈는데, 유닛 활동을 전개하다가 첫 콘서트 이후 가장 최근 앨범으로 ‘완전체’ 복귀했다. 주 활동 무대는 해외다. 2021년 데뷔 이후 2022년 영국 BBC ‘2022 올해의 여성 100인’으로 선정되는 등 외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AI 굿 포 글로벌 서밋’ 폐막식 공연에 올랐다.

이터니티가 세계 최초의 가상 아이돌인 만큼 박 대표는 콘텐츠 행사나 국회 토론회 등에 참석해 그룹과 자사 기술을 소개하고 나아가 AI 저작권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왔다. 박 대표는 “해외에서는 한국의 ‘K팝’과 AI로 만들어진 이터니티라는 ‘가상 아이돌’, 이들이 아티스트로서 실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효율적인 ‘기술력’을 복합적으로 바라보며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활동만 보면 공식 영상이나 소통 등이 저조해 아이돌보다는 버추얼 모델로서의 성격이 부각되는 점은 짚어볼 부분이다. 자금 규모 차이는 있지만 MBC 사내벤처로 시작해 5인조 남자 아이돌 ‘플레이브’로 이례적인 성과를 낸 블래스트와 대조되는 면도 있다. 펄스나인은 카카오게임즈 관계사 넵튠(2021년)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으나 2022년 이후 추가 유치 여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글로벌 정조준, 첫 AI 영화제 대상 이어 상업 광고서 ‘두각

올 7월 개막을 앞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공식 메인 포스터는 국내 최초로 AI 필름메이킹을 도입한 스튜디오프리월루전과 배우 박신양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스튜디오프리월루전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AI 영화와 AI 광고를 제작한 AI 영상 전문 프로덕션이다. 두바이에서 처음 개최된 국제 AI 영화제(AIFF)에서 회사 대표인 권한슬 감독의 단편 영화 ‘원 모어 펌킨’이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영상 산업에 AI 기술 도입이 본격화된 가운데 국내 업계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2023년 설립된 이 회사는 영상 제작의 비효율성을 해결하는 데서 경쟁력을 찾고 있다. 고비용을 요구하던 촬영 및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AI 비디오 기술로 대체해 고퀄리티 AI 영상 제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영상 제작 절차에서 AI는 카메라 앵글, 조명 설정, 심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전체 과정을 컨트롤하는 제작자가 생성형 AI 작업 요청 단계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프롬프트로 입력해 AI가 더 완벽한 영상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스튜디오프리월루전은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구상했고, 하이엔드 영상 시장에 집중해 영화, 드라마, 광고 등 분야로의 확장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매출은 5억 원으로 수익화는 초읽기 단계다. 최근 AI 창작자 간 영상 공유 등 교류를 지원하는 개방형 플랫폼 ‘AI-Play’를 선보이고 AI 영상 광고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영향력 확대에도 나서고 있다.

#글로벌 콘텐츠 경쟁서 ‘제작 효율’ AI 기술 선점해야

문화산업에 AI 기술이 폭 넓게 개입하면서 AI의 한계점과 창작물의 본질에 대한 논의 역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업계에도 주어진 질문이다. 오스카가 새 지침을 내놓은 배경에는 앞서 올해 수상작과 관련한 생성형 AI 활용 논란이 있다. 남우주연상 수상자 아드리안 브로디(영화 ‘더 브루탈리스트’)의 헝가리어 억양과 ‘2관왕’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주인공의 음역대가 생성형 AI로 조정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이 제기됐다. AI 활용의 경계와 창작 윤리에 대한 논의는 국내에서도 시작됐다.

우려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영역에서 생성형 AI 기술의 확산은 부정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IP 보유 기업이 아닌 기술력과 제작 솔루션을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다. 빠른 제작 속도와 낮은 단가, 언어·문화의 제약을 넘어서는 효율성은 국내 콘텐츠 산업에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콘텐츠미래융합포럼 의장)는 “오픈AI 등 선두 빅테크 대비 AI 엔진이 약한 한국은 응용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넷플릭스 등 해외의 막대한 자본력으로 흔들리고 있는 국내 콘텐츠 시장의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시장이 변화하는 초기에 콘텐츠, 영상 부문에서 인력과 비용 구조를 빠르게 효율화 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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