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속의 작은 불꽃

2025-01-22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언어라는 실을 통해 타인들의 폐부까지 흘러 들어가 내면을 만나는 경험.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을 꺼내 그 실에 실어, 타인들을 향해 전류처럼 흘려 내보내는 경험”이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보면 한강에게 문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언어의 실’이고 그 실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내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인데, 그 전달의 방식이나 형태는 ‘전류’와 같습니다. 여기서 문학은 언어라는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류입니다.

절실한 질문 언어의 실에 실어

개인의 불꽃 연결하는 게 문학

전류의 상상력, 한강 소설의 근원

흰의 가요와도 짜릿하게 연결

이 구절에 관련되는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상 소감보다 사흘 앞서 있었던 수상자 강연에서 먼저 언급된 바 있습니다. 여덟 살 나이의 어린 한강이 1979년에 썼던 시 네 행이 소개됩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40여 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유년 시절의 자신의 글과 마주친 한강은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며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빛을 내는 실”이라고 씁니다.

이 이미지에서 중요한 것은 기본 단위가 되는 하나하나의 심장이고 그 심장의 핵심이 되는 전류입니다. 심장들 사이의 연결은 그다음 일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발표 몇 시간 전에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도 바로 이 이미지의 기본 단위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입니다.

기자가 질문합니다. “집필하시는 순간, 선생님이 보시는 ‘골방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집필공간으로서의 물리적 풍경이 아니라 ‘쓰고 있는 순간에 선생님께서 보시는 상태의 정신적인 풍경’이 궁금합니다.”

이 훌륭한 질문에 대한 한강의 멋진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심장 속, 아주 작은 불꽃이 타고 있는 곳. 전류와 비슷한 생명의 감각이 솟아나는 곳.”

심장 속의 작은 불꽃. 이것이 한강 문학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개별자의 것, 일인칭으로서의 개인의 것입니다. 그 불꽃들 사이의 연결은 이를테면 광장에 모인 촛불들의 집합과는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광장에 모인 촛불들이 공동주관을 구성한다면 그 불꽃들 사이의 연결은 1대 1의 상호주관을 구성합니다.

또 그 불꽃은 일반적인 불이 아니라 전류입니다. 물질적 상상력, 즉 사물의 형상이 아니라 사물을 구성하는 질료에 대한 상상력을 천착한 바슐라르의 4원소는 물·불·대지·공기인데, 이에 비추어보면 천둥번개는 공기에 속하고 천둥번개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은 보통의 전류는 불에 속합니다.

동양철학에서 주역의 8괘는 건·태·이·진·손·감·간·곤이고 그것들은 각각 하늘·못·불·천둥번개·바람·물·산·땅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천둥번개는 별도의 범주인 진(震)으로 구분되어 있고 규모가 작은 전류는 불의 범주인 이(離)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 생각은 전류를 불과 물의 결합 내지 화합으로 보는 쪽으로 이끌립니다. 모순되는 것들을 결합시키는 수사법을 옥시모론(Oxymoron)이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모순어법 내지 형용모순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렇게 보면 전류는 불과 물의 결합이라는 모순어법적 존재가 됩니다. 마치 알코올이 그런 것처럼. 결합이라는 말이 기계적 결합을 연상시킨다면 화합이라는 말로 바꾸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일리가 있다면, 물과 불의 화합으로서의 전류의 상상력이라는 관점에서 한강 문학을 재조명해볼 수 있겠습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대중문화와 관련한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수 박혜원의 예명이 흰(HYNN)입니다. 박혜원은 MBC 특집 다큐 ‘한강이 온다’에 출연해서 자신의 예명이 한강의 소설 『흰』에서 따온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라는 소설 『흰』의 문장을 통해 음악을 하는 자신의 마음의 자세를 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강 문학이 대중문화와 전류적으로 연결되는 이런 장면이 몹시 반갑습니다.

성민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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