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엄혹한 시대의 한복판에 선 청춘들이 있다. 비록 나라를 잃었지만, 불타는 활시위를 당겨 부조리에 대항하고자 했던 강인한 마음의 소유자들. 시대의 비극에 짓눌려 온 인물들이 자기 삶의 방향을 용감하게 선택하는 모습을 그려낸 소설이 감동적인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해숙 소설가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현실을 되살려내는 유의미한 작업에 도전했다. 장편소설 ‘모던 걸즈, 달을 쏘다(걷는사람·1만6,000원)’은 재봉틀을 다루는 여성과 활을 쥔 여학생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용기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에 왜 여학교에서 국궁 대회를 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공부를 위해 경성으로 떠난 만월은 ‘내재봉소’의 주인 두례와 그의 딸 국화, 조카 정록과 함께 생활한다. 미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 만월은 경성종합체육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부지런히 국궁을 연마하고, 두례에게 재봉을 배운 국화는 아버지가 있는 만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재봉에 매진한다.
하지만 국궁과 재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학생들에게 유학을 약속한 학교는 충격적인 목적을 숨기고 있었다. 만월의 국궁 사범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평화롭던 학교는 위기를 맞이하고, 뒤이어 만월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김홍정 소설가는 “김해숙은 일제가 감추고자 하는 전시 국가 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의 실체를 습사무언(習射無言)을 금과옥조로 아는 ‘궁술’을 통해 다룸으로써 불편한 시대를 고발하는 저력을 보여준다”며 “이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한국인으로 올림픽에 나가 싸우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은메달을 딴 국가대표 유도 선수의 고백과 다르지 않다”고 해설을 붙였다.
김해숙 소설가는 “내 소설에는 그 시대의 영웅이 나오지 않는다. 난 영웅이 아닌 소시민의 삶을 담아 좀 더 가까운 주변인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소설을 읽고 영웅이 아닌 사람들이어도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며, 자기만의 무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그 무늬 안에는 절망의 시대를 견뎌 온 희망의 무늬가 담겼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소설가는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2016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리병이 그려진 4번 골목’과 장편소설 ‘금파’를 출간했다. 제1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수상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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