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진영씨(44)는 그림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자기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가 깜짝 놀랐다. 9세 조카가 그린 이씨는 목이 구부정하게 앞으로 쏠려 ㄱ자에 가깝게 굽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웹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어 근무시간 내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기에 스스로도 ‘거북목’일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제3자의 눈으로 확인한 상태는 더 충격적이었다. 이씨는 목 주변은 물론이고 어깻죽지로도 퍼진 통증에 손가락까지 저린 감각이 느껴져 ‘목 디스크’(경추 추간판탈출증)일 것이라 의심은 하고 있으나 시간에 쫓겨 병원을 찾기가 어렵다. 그는 “진단해보니 상태가 심각해 수술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돼서 병원 가기 두려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하루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고 이동 중에도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전자기기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갤럽이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스마트폰 사용 조사 결과를 보면 2016년 처음 90%를 돌파한 스마트폰 사용률은 지난해 98%까지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기준 60대 이하 연령층의 사용률은 100%에 달해 거의 모두가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와 일부 고령층을 제외하면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를 쓰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추세와 함께 증가한 질환이 바로 거북목 증후군, 목 디스크 등 목 건강을 위협하는 근골격계 질환이다.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화면이든 손에 들고 보는 스마트폰 화면이든 눈과 비슷한 높이로 맞춰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사용자는 화면을 시선과 같은 높이로 올리는 대신 고개를 숙인 자세에 더 익숙해져 있다. 이렇게 장시간 고개를 숙이고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면 목과 척추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고개를 숙일수록 목 근육은 더 강한 힘을 내서 머리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보통 고개가 1㎝ 앞으로 나올 때마다 경추에는 2~3㎏씩 추가 하중이 가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거북목이 심한 경우 목에 가해지는 부담은 머리 무게의 5배 이상으로 상승할 수 있다. 성인 기준 머리 무게는 5㎏ 안팎으로, 심한 거북목이 되면 목에 25㎏이 넘는 추가 부담이 따르는 셈이다. 이는 경추 디스크에 대한 압력을 가중해 뒷목과 어깨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근육의 과도한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통증이 만성화하는 근막통증증후군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개를 앞쪽으로 1㎝ 내밀 때마다
경추에 추가 하중 2~3㎏씩 더해져
두통·수면장애·디스크 손상 연결
주변 근육에도 영향 ‘폐활량 감소’
자세교정이나 약물·주사로 치료
6주 이상 차도 없으면 수술 고려
거북목 증후군은 목이 앞으로 빠진 비정상적인 자세 때문에 목과 어깨의 근육과 인대가 늘어나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정상적인 목뼈는 모두 7개로 구성돼 있다. 귀는 어깨뼈 봉우리와 같은 수직선상에 있고 목뼈의 배열은 앞쪽으로 볼록하게 휜 C자 형태를 유지한다. 목뼈가 정상적인 C자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머리가 앞으로 쏠리는 자세가 장시간 이어지면 거북목 증후군이 생긴다. 방청원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거북목 증후군은 노화나 근육 약화로도 일어나지만, 최근 컴퓨터·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장시간 사용하는 젊은층에서도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거북목 증후군은 단순히 외형상의 문제를 넘어 두통, 수면장애, 디스크 손상 등 다양한 통증과 기능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머리뼈와 목뼈 사이 신경이 눌리면 두통이 발생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만성 피로와 집중력 저하까지 초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디스크 손상과 관절염을 가속화하는 한편 주변 근육 기능도 떨어뜨려 폐활량이 30%까지 감소하기도 한다.
목뼈가 정상적인 C자 배열을 이루지 못하면 뼈 사이를 완충하는 디스크에도 변형이 올 수 있다. 디스크가 찢어지거나 튀어나와 경추를 지나는 신경을 압박하면 점차 통증이 심해지는 목 디스크로 이어진다. 이근호 바른세상병원 척추센터 원장은 “바르지 못한 자세가 지속되면 C자로 있어야 할 목뼈가 일자목이나 거북목으로 변형되어 통증을 일으키게 된다”며 “목 디스크 증상은 초기엔 뻐근함이나 피로감이 느껴지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와 팔이 아프고 심한 경우 손이나 팔 저림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북목 증후군이나 목 디스크는 자세 관찰과 병력 청취, 각종 영상검사 결과를 종합해 진단한다. 엑스레이 촬영 등 검사에선 정상으로 보이더라도 실제 환자가 겪는 증상의 정도는 심각할 수 있으므로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증상의 특징을 확인해야 그에 맞는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목 디스크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등으로 어느 디스크가 튀어나와 신경을 누르는지 확인 가능하다. 다만 목 디스크가 신경을 압박하기 시작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등 통증이 심한 초기에 비해, 시간이 다소 흘러 디스크 일부가 제자리로 이동하는 등 경과가 자연히 호전되는 경우도 있어 상태별 적절한 대처가 중요하다.
이근호 원장은 “목 디스크 증상이 경미한 단계라면 자세교정, 약물치료, 주사치료 등 비수술적 치료로 호전될 수 있지만 비수술적 치료에도 6주 이상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치료를 미루다 상태가 악화된 경우라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도 있다”면서 “목 움직임에 불편함이 느껴지거나 통증이 지속된다면 하루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치료든 예방이든 올바른 자세 유지가 가장 기본이 된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들어서 목이 기울어진 머리의 과도한 무게를 지탱하지 않도록 바른 자세를 지키는 것이 좋다. 20~30분마다 목을 뒤로 젖히는 신전 운동을 해주면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과 관절, 인대의 긴장을 풀어주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앉아서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쓸 때도 화면을 눈높이에 맞추고 가능한 한 큰 글씨로 보면서 화면과 눈 사이 거리를 30㎝ 이상 유지해 목이 앞으로 나오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마우스와 키보드는 몸에 가깝게 두는 것이 권장된다. 잘 때도 경추의 C자 곡선을 잘 받쳐줄 수 있게 돕는 베개를 선택하면 좋다.
목을 지탱하는 데엔 등과 어깨의 근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거북목이 나타나는 초기부터 이 부위 근육을 강화하면 거북목 증후군에 이어 목 디스크까지 악화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방청원 교수는 “거북목 증후군은 어깨가 말리고 등이 둥글게 굽은 자세와 함께 나타날 수 있어 어깨를 펴고 고개를 바로 세우는 전신 자세교정이 중요하다”며 “방치하면 디스크 손상, 만성 신경통 등으로 악화할 수 있는 만큼 올바른 자세와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조기에 예방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