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준에 맞춘 규제, 현장 상황과 괴리 커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만 강제, 항공사 부담 확대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국내 항공사들이 요즘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가도, 환율도 아니다. 과거의 시장 상황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 만든 규제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2019년 대비 공급석 90% 유지' 조치가 대표적이다. 소비자 편익을 지키겠다며 도입된 이 규제는 정작 현장에서는 공급 과잉과 출혈 경쟁, 노선 이탈이라는 정반대 결과를 낳고 있다.

2019년은 괌이 가족 여행지의 '영원한 강자'로 불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괌은 다르다. 시설 노후화와 물가 상승, 미주 노선 특유의 강달러 부담까지 겹쳐 수요가 빠르게 위축됐다. 여행 트렌드도 이미 베트남 다낭, 푸꾸옥 등 동남아로 옮겨간 지 오래다. 그럼에도 공정위 기준은 5년 전 수요를 억지로 재현하라고 요구한다. 시장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고려되지 않았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계열사들은 규제를 맞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괌 노선 공급을 늘렸다. 좌석은 채워지지 않는데 운항만 계속해야 거의 텅 빈 채로 운항하는 날이 반복된다. 승무원 최소 인력은 그대로여서 인건비 효율성은 바닥 수준이고, 수익성은 애초 계산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부담이 한진그룹 계열 항공사 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급이 억지로 늘어나자 다른 LCC들은 더 먼저 무너졌다.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괌 노선 운항을 포기했다. 누가 보더라도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공급량이지만, 규제 이행을 위해 한진그룹 산하 항공사들은 운항을 멈추지 못하고 LCC는 경쟁에서 탈락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독점 방지 규제가 오히려 독점을 굳히는 모순이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는 "유연성 조항이 있어 대한항공이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업계에서는 이 말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규제를 부과한 기관에 해당 기업이 직접 찾아가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으니 수정해달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기업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어떤 시선과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지는 업계 누구나 알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공정위가 현장의 변화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지다. 코로나19 이후 항공 수요는 지역별·노선별로 완전히 다른 궤적을 보이고 있고, 환율·경쟁 항공사의 전략까지 수시로 변한다. 그럼에도 '2019년'이라는 전제에만 머물러 있다면 규제는 결국 국내 항공사들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경쟁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돌아온 이유다.
규제의 취지는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취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과정은 필요하다. 항공은 국가 기반 산업이자 수요 변동이 큰 시장이다. 공급을 억지로 고정할 경우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비용 구조가 취약한 항공사들이다. 이미 괌에서 나타난 현상이 다른 노선에서도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aykim@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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