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아파트값 폭등 뉴스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박완서 작가는 1989년 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어디 산다고 말할 때 쭈뼛쭈뼛해지는 것도 나의 소심증이다. 지난 일 년 사이에 곱절이나 값이 뛴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불로소득을 계산하면, 내가 속한 사회가 미쳐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힌다.” 그의 ‘소심함’은 불로소득에 대한 윤리적 불편함이자, 사회의 방향이 어딘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감지한 시대적 감수성이었다. 그리고 36년이 지난 지금, 그 위기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권 따라 왔다갔다 부동산 정책
정책 불신 낳으며 아파트값 폭등
10·15 대책은 불가피한 제동 장치
정책 신뢰 위해 종합 후속책 필요
박완서 작가가 묘사한 시기는 1988~90년, 88올림픽 특수와 저유가·저달러·저금리의 ‘3저(低) 호황’으로 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10%에 달하던 시기였다. 우호적인 거시경제 환경, 임금상승, 서울 인구의 1000만 명 돌파가 맞물리며 서울 아파트 가격은 3년간 평균 25% 이상 급등했다. 노태우 정부는 폭등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1기 신도시 건설과 토지공개념 도입을 추진했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신도시 건설은 기반시설 부족과 졸속개발이라는 비판적 여론에 직면했고, 토지공개념은 여당이 반대하고 야당이 찬성하는 초유의 정치적 역학 속에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보통사람을 위한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를 내세워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1기 신도시는 한국 주택정책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급정책으로 평가받았고, 토지공개념은 한국 보수 정권 최초의 진보적 경제정책으로서 부동산 투기 억제와 자산불평등 완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주택가격은 5년 연속 안정세를 보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정책은 거시경제 여건과 정권 주기에 따라 완화와 강화가 반복되는 ‘정책적 진자(Policy Pendulum)’의 모습을 보였다. 경기가 침체되면 규제를 풀고, 과열되면 다시 죄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대응적 정책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정책의 신뢰를 약화시켰다. 가장 큰 문제는 누구도 정부의 시그널을 ‘지속적’이라고 믿지 않게 된 것이다. 현재의 서울 아파트값 폭등 또한 지난 20여 년간 누적된 정책 불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더 근본적으로 서울 아파트 가격의 문제는 교육과 일자리, 산업구조 전환 지연과 저성장,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수도권 집중이 맞물린 복합적 결과이다. 주택공급, 세제, 거래제한, 금융정책만으로는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어렵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요동칠 때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다시 살펴본다. 이 조사는 전국 약 2만 가구를 대상으로 2012년 이후 동일 표본을 장기 추적하는 국내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자산·소득 데이터이다. 2024년 기준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4894만 원이다. 소득 상위 20%의 순자산은 10억3252만원으로 전체 가계자산의 46%를 차지한다. 즉 열 가구 중 상위 두 가구가 절반에 가까운 자산을 보유한 셈이다. 반면 소득 하위 20%의 순자산은 1억4974만원으로,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에 불과하다. 2024년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이 약 11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서울 아파트 시장 논의는 사실상 상위층의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 급등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사안이다. 1년 만에 한강벨트 주요 단지의 가격이 30% 가까이 상승하는 환경에서 안정적인 주거 기반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비규제지역을 중심으로 한 갭투자가 가격 급등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시장의 과열을 일시적으로 멈출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10·15 대책은 폭등의 열기를 식히고 시장의 과도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대책이 얼마나 시간을 벌어줄지는 불확실하므로, 불안한 시장 심리를 설득하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종합적 후속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서울의 집값을 논하는 사이, 20대의 현실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로 삶의 터전을 잃고, 캄보디아 취업 사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청년들의 불안을 악용하는 구조적 허점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 통계청의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20~60대 중 유일하게 20대의 고용률만 하락했다. 그들의 좌절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의 무관심이 만든 결과다.
부동산 불평등이 세대 간 이동의 사다리를 끊어놓은 한, 청년의 노력은 구조적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다. 사회지도층이라면 자기 아이들만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36년 전 박완서 작가가 불로소득 앞에서 느꼈던 ‘소심함’은, 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되새겨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다. 그 소심함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마지막 감수성일지 모른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