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 ‘여객선 현대화 펀드’ 악용
정부 지원금만 받고 먹튀 생각만
8년 전 결론, 단계적 공영제 도입
해수부, 왜 또 ‘도입 토론회’ 하나
인천 강화군 볼음도는 북방한계선(NLL)에 인접한 섬이다. 불과 7㎞ 거리의 강화 본섬과 볼음도 간에 여객선은 하루 3번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 9월 한 달, 여객선이 무려 24회차나 결항했다. 선사의 결항 이유는 ‘저수심’이다. 결항은 9월뿐 아니라 연중 계속된다.
주민들은 결항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섬연구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선사가 사리 물때의 저수심을 핑계로 여객선을 안 띄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사리 물때는 저수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수심도 있다. 그러니 시간을 변경하면 충분히 운항이 가능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저수심은 볼음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해안 여객선 대다수가 저수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래도 매일 배 시간을 변경해 운항하지 삼보해운처럼 대놓고 결항하지는 않는다. 시간을 변경해서 정상 운항해야 마땅하다. 볼음도 항로는 해양수산부와 강화군으로부터 예산 지원금까지 받고 있다. 선사가 부당하게 결항하면 지원금을 회수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가 여객선 안전 강화를 위해 마련한 ‘여객선 현대화 펀드’를 악용하는 선사들도 있다. 에이치해운은 2018년 서귀포 성산항~고흥 녹동항 노선을 15년 이상 운항하는 조건으로 1만4915t급 ‘선라이즈 제주호’ 건조비 476억원의 90%를 직접 지원(50%)과 공적자금 대출(40%) 형태로 지원받았다.
하지만 에이치해운은 약속을 어기고 제주 항로 운항 4개월 만에 울릉도 노선으로 운항 변경을 신청했다. 처음에 해수부는 반려했다. 선사는 해수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해수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이상하게도 해수부는 2022년 4월 항로 변경을 승인했다. 선사는 ‘울릉 선플라워 크루즈’로 이름표를 바꿔 달고 울진 후포항~ 울릉도를 3년 남짓 운항했지만 최근 적자를 이유로 이 또한 중단했다. 제주도민에 이어 울릉도 주민들까지 우롱한 것이다. 해수부는 정부 지원금으로 만든 여객선으로 이익만 좇는 선사의 행태를 언제까지 방조할 셈인가.
그동안 정부는 국민의 해상 이동권 보장을 위해 선사에 수많은 예산을 지원했다. 하지만 해상 교통은 제자리걸음이다. 선사들은 어떻게든 정부에서 지원금을 뜯어내 ‘먹튀’할 생각만 하지 여객선 안전이나 편의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안전은 더 나빠졌다. 세월호 참사 직전 5년간보다 직후 5년간 여객선 사고가 75%나 늘었다. 전체 선사의 60%가 자본금 10억원 미만, 보유 선박 2척 미만의 영세 업체들이니 안전에 투자할 여력 자체가 없다. 여객선은 단순히 섬 주민만의 교통수단이 아니다. 연평균 2000만명의 여객 중 일반 국민이 80%인 대중교통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서 채택된 뒤 이재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객선 공영제는 국정과제가 됐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해수부가 오히려 공영제 추진을 지연하고 있다. 지난 9월4일 해수부는 국회에서 산하기관인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을 앞세워 여객선 공영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섬 주민 교통권 확보’란 명칭을 달았지만 선사 대표는 초청하면서 정작 섬 주민은 한 사람도 토론자로 초청하지 않았다. 결론은 ‘단계적 도입’이었다. 단계적 도입은 이미 2017년 문재인 정부 때 결론 난 것이다. 그때 로드맵도 마련됐다. 그 로드맵대로라면, 2025년에는 낙도 보조항로 공영제가 실행돼야 했고 2030년에는 전면 공영제가 실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올해 낙도 보조항로 공영제를 무산시켜버린 것은 해수부다. 그러면서 8년 전 결론 난 단계적 공영제 도입 토론회나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물타기 행정이다.
대체 해수부가 왜 그럴까? 지난 정권에서는 110대 국정과제로 채택해 놓고도 ‘공영’을 반대하던 윤석열의 눈치를 본 측면도 있지만, 해수부 자체도 여객선 공영제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해수부는 민간 여객선사들의 사업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선박 건조비 90% 지원에 적자 보전 지원, 독과점 항로 보장까지 해주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그냥 특혜일 뿐이다.
해수부는 더 이상 선사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말아야 한다. 공영제에 편입되지 않겠다는 선사들은 남겨 두고 실행하면 된다. 독과점도 깨고, 예산 지원도 끊고 공영제 여객선과 자유 경쟁을 시키면 된다. 언제까지 선사들에 특혜를 줘가며 국민의 해상 이동권 제약을 방조할 셈인가. 해수부는 더 미루지 말고 국정과제인 여객선 공영제를 즉각 실행해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