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방문한 경북 구미시 농심 구미공장. 전 과정이 자동화된 총 16개 생산 라인에서 원료 입고 후 35분 만에 라면 한 봉지가 사람의 손길 한번 거치지 않고 완성돼 나왔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연간 11억 5000만 개의 라면 가운데 약 10%는 호주·일본 등 해외로 수출된다.
내수 전용이던 농심 구미공장이 수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은 2019년부터다. K라면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수출 전용인 부산공장을 풀가동해도 물량이 부족하자 구미공장까지 수출용 생산에 나섰다. 이에 농심의 전체 해외 매출은 2019년 5440억 원에서 2024년 8901억 원으로 60% 이상 증가했고 올해는 1조 원을 바라보고 있다. 김상훈 농심 구미공장장은 “인공지능(AI) 자동화 등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을 통해 원가 절감과 품질 향상이 동시에 이뤄지며 수출 경쟁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휼식품이 전 세계인의 소울푸드로
라면이 국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3년이다. 한국전쟁 후 식량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미국의 원조를 받은 밀가루 소비를 촉진하고 쌀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분식 장려 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맞춰 삼양식품의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삼양라면’을 선보였고 가난한 사람들이 빠르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대표적인 구휼(救恤) 식품이 됐다.
라면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해외시장에 본격 진출한 2016년부터다. 소셜미디어에서 매운 불닭볶음면 먹기에 도전하는 일명 ‘불닭 챌린지’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2020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에 대한 관심까지 더해지며 라면 수출이 날개를 달았다.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K푸드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며 라면 수출액은 매년 20~30%씩 상승했다. 2012~2015년 연간 2억 달러(약 2900억 원) 초반대에 머물던 라면 수출액은 지난해 12억 4850만 달러를 기록해 10년 새 6배 증가했다. 특히 삼양식품은 지난해 해외 매출이 2023년 대비 65% 증가하며 역대 최고인 1조 3359억 원을 기록했다.
전후 배고픔을 달래주던 라면은 이제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소울푸드’가 됐다. 올해 초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고의 인스턴트 라면 17종을 꼽았는데 그중 농심의 ‘신라면 블랙’ ‘신라면 건면’ ‘너구리’, 삼양식품의 ‘불닭콰트로치즈’ ‘불닭짜장’, 팔도의 ‘진국곰파게티’ ‘진국설렁탕면’ 등 7개가 한국 제품이었다.

◇발음도 못하던 ‘비비고’, 글로벌 브랜드로
라면 외에 냉동 만두와 양념치킨·과자 등도 K푸드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K푸드를 지금과 같은 글로벌 주류 식품으로 올리는 데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비고는 ‘한식의 세계화’를 목표로 식품과 외식 등을 아우르는 CJ제일제당의 통합 브랜드로 탄생했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브랜드로 내놓을 대표 식품을 물색하던 중 △한식이면서 △해외에 진출해도 어색함이 없고 △냉동으로 유통이 가능한 ‘만두’를 낙점했다. 기존 제품과 만두피와 소 등을 차별화해 2013년 첫 출시된 비비고 만두는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50% 상당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곧바로 해외로 눈을 돌린 CJ제일제당은 2014년 덤플링(Dumpling)이 아닌 한국어 발음 그대로 ‘만두(Mandu)’로 비비고 만두를 현지에 출시했다. 당시 한식은 글로벌 시장의 비주류였던 데다 ‘비비고(bibigo)’ 브랜드는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비비고 브랜드 그룹장을 지낸 김숙진 CJ제일제당 한국마케팅본부장은 “당시에는 현지인들이 ‘바이바이고’나 ‘비바이고’ 등으로 부르는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다”며 “한식에 대한 배경 지식이 아예 없는 외국인들에게 한식이 왜 건강식이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온갖 자료를 만들어 전달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현재 비비고 브랜드는 미국 내 6만여 개의 유통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유럽으로 보폭을 넓히며 최근 독일 최대 e커머스 플랫폼 아마존에 ‘비비고 스토어’를 공식 입점하고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네덜란드 등 인근 서유럽 국가에서도 주요 유통 채널 입점이 이어지는 중이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비비고 만두 단일 품목만 2020년 글로벌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기업·개인 간 거래(B2C) 기준 시장점유율 40%로 2위와 3배 이상 격차를 벌리며 1위를 기록했다.
매운맛의 한국식 양념치킨도 미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제너시스BBQ그룹이 운영하는 BBQ치킨은 지난해 미국 매출 약 3000억 원을 달성했으며 올해 미국에서만 100개의 신규 매장을 출점하면서 현지 매장 수를 총 350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식 기업이 미국에 연 매장 수는 전년 대비 229개 늘어난 1007개로 역대 처음으로 1000개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