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가지 않는 사람

2025-01-05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시집서점’을 운영하는 시인 유희경은 꼭 이 시처럼 생겼다. 조금 기다랗고, 조금 이상하고, 조금 아름답고, 조금 알 수 없는 사람. 슬픔을 차곡차곡 개켜 서랍에 정리해 두고는 사람들이 오면 그에 맞는 시집을 건네는 사람. 나는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 중 으뜸은 ‘시 읽는 사람을 두는 일’이라 생각하기에 그가 하는 일, 그의 일터를 사랑한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오묘한 설정과 생각을 번복하며 진실을 조금씩 유예하는 데 있다. 특별한 문장이나 기교 없이 무심한 목소리로 아름다움을 계단처럼 쌓는 솜씨라니! 화자는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커피잔을 씻는다. 생각 속에서 그는 대화 중이다. 대화가 꼭 둘 이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보이지 않지만 아직 여기에 있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더 열렬할 수 있다. 어느 때는 죽은 사람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들은 ‘가지 않는 사람’, 자꾸 돌아오는 사람이다. 대화는 기찻길처럼 길어진다. 젖은 커피잔을 엎어두었다가 엎어둔 것이 “젖은 내 손”임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처럼 고요한 혼잣말이 그가 종일 나누는 “대화”일까 생각하면 쓸쓸해지기도 한다.

시집이 팔리지 않는 시절이라 그 홀로 서가를 지키는 일이 많다지만 이번 겨울에는 즐거운 일이 생겼다. 광화문 교보 빌딩 현판에 이 시의 한 대목 “오늘은 볕이 좋다 아직/ 네가 여기 있는 기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렸다. 모쪼록 이 시 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이 따뜻한 온기와 당신이 아직 ‘곁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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