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첫 그림엽서를 판매하게 된 프리마켓 당일, 토요일. 날씨는 물론 습도 온도까지 완벽했다. 다양한 상품과 작품으로 무장한 셀러분들이 자리를 잡고 분주히 자신의 공간을 꾸미고 있었고 나 또한 간이 테이블을 펴고 엽서를 정성껏 진열했다. 엽서 한 장에 천원, 열두 장에 만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 엽서를 살펴보고 구매해줄 사람들을 기다렸다.
화창한 주말, 오고 가는 많은 가족, 연인, 친구들. 하지만 사람들은 내 테이블 앞에 머물지 않았다. 슬쩍 기웃거려본 다른 셀러들의 먹거리와 소품, 공예품 마켓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누가 내 엽서를 봐주려나 한참을 기다리던 중 작고 귀여운 소년이 쪼르르 다가오더니 엽서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덩달아 따라온 아이의 엄마도 한옥마을 명소가 그려진 드로잉 엽서를 신기한 듯 살펴보았고, 난 첫 판매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엽서를 한 장 사고 싶다며 엄마를 졸랐다. ‘그걸 사서 뭐하게? 차라리 먹을거 사자!’ 툭 하고 던져진 아이 엄마의 한마디는 내 가슴속 한 곳에 찌릿한 아픔을 남겼고, 그렇게 둘은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나 흘렀을까? 종일 아무것도 팔지 못한 채 마켓을 철수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준비한 상품을 멋지게 완판시킨 셀러들은 자리를 하나둘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온종일 마켓을 지키느라 고픈 배를 달래며 사 먹은 수제 과자와 아이스커피 한잔 그리고 입점비용까지, 제대로 마이너스를 찍었다.
냉혹한 현실에 풀이 죽은 나는 눈치를 보다 정리를 시작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곤두박질치는 마음의 공허와 우울에 쉽게 고개를 들 수 없던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맞은편에서 조각 공예품을 판매하던 젊은 남자분이었다. 내 엽서를 진지하게 고르다가는 12장 세트를 집어들었다. 그게 나의 생애 첫 엽서 판매의 순간이었다.
안쓰러움과 격려와 응원이 담긴 만원.
그리고 내게 남은 건 핑크빛 꿈과 같았던 엽서 수천 장이 담긴 박스들이었다.
차가운 실패를 맛본 봄은 따스함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고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마냥 놀 수는 없어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버티던 중, 우연히 모집공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주남부시장 청년몰 모집공고였다.
전주남부시장은 한옥마을 옆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들도 전주의 풍습과 문화, 음식을 경험하고 싶어 찾는 곳이다. 당시 시장 안에 조성된 청년몰은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뭉친 젊은 사업가들이 모인 공간으로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소자본으로도 대박의 꿈을 펼칠 수 있다며 소문이 자자했다. 1박 2일, 런닝맨, 슈퍼맨이 돌아왔다, 알쓸신잡 등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했고 청년몰의 흥행은 다른 시, 도 청년 사업의 롤 모델이 될 정도였다. 그만큼 청년몰 입점은 경쟁률도 높았을뿐더러 심사도 아주 까다로웠다.
난 너무나도 절실했다. 가지고 있는 자본은 바닥이었고, 내가 그린 그림으로 엽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굿즈를 선보일 공간이 필요함은 자명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에 사업 샘플들을 탄탄하게 준비하고 입점심사를 받았다. 관계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림에 대한 칭찬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낙방이었다. 엽서나 소품보다는 음식이 더 호응도가 높다는 이유였다. 역시 그림으로 꿈꾸는 미래라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 일까 낙담하고 고민하던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청년몰 담당 매니저의 전화였다. 내 한옥마을 엽서가 너무나도 아쉽고 매력적인 상품이라는 말과 함께 이어진 매니저의 새로운 제안은 전주남부시장 야시장을 빛내줄 소품 마켓이었다.
박성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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