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청년의 휘파람 소리

2025-03-17

‘클래식의 산책’이란 강의를 듣고자 길을 나섰다.

Y마트라는 식료품 판매장 앞을 지나가는데 그 마트에 납품할 식재료를 싣고 온 청년기사가 손수레를 끌고 가면서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이 시국에 휘파람 불며 일한다!’ 갑자기 젊은이의 인상이 좋아 보였다. 계절은 봄이라지만,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휘파람 불며 봄을 맞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에게도 젊은이처럼 휘파람 불며 일할 때가 있었던가! 과거를 생각하는 길목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시리다. 그동안 긍정의 힘으로 나를 끌고 가고자 노력했다지만 휘파람 불며 신명 나게 일을 해본 기억이 별로다. 그런데 고향에서 부모님이 농사지을 때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이 생각났다. 그때 버들피리를 꺾어 불었고 풀 뜯는 소 등을 타고 아버지를 보며 웃었던 기억이 가슴속을 환하게 했다.

‘아버지 쟁기질 하고/ 어머니는 밭둑을 오선지 삼아/ 음표 찢듯 씨앗을 묻고/

형은 두엄 뿌리고/ 나는 고무래로 흙덮기 하던 땅‘ 이란 시도 그 시절 선물이다.

젊은이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가던 길 가는데, ‘휘파람을 불며 가자 언덕을 넘어/ 송아지가 엄마 찾는 고개를 넘어/ 아가씨 그네 뛰는 정자나무 지나서/ 휘파람을 불며가자 어서야 가자/ 아카시아 꽃잎 향기를 풍기는 언덕을 넘어서 가자. 는 박재홍 가수 “휘파람을 불며”라는 노래가 휘파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듯 했다. 박재홍은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1947년 무렵 개최된 가수 선발대회에서 뽑혀 가수로 데뷔했다. 그리고 1940년 후반부터 1960년까지 가수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젊은이들이 배불리 먹지도 못했고 입지도 못했다. 그러나 인생의 꿈과 낭만은 있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큰 비전은 없었어도 삶의 진실과 첫사랑의 꿈과 자연 속에서의 희망이 있어 서로 손잡고 노래하며 저 산 넘어 고개를 넘어 언덕(희망) 길을 달리고자 하였다.

1950년에서 60년대 지성인들의 필독서는 사상계(思想界)였다.

사상계는 장준하(1918-/975) 선생께서 사재를 털어 1953년 4월 창간한 것. 선생은 창간호 권두언에서 ‘인간은 복잡하고도 명료한 언어를 사용하며, 개념적 추상적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적이며 적극적인 활동과 반성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적으로는 민주⭑양심세력을 대변했고, 꺾이지 않는 필봉은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5.16 쿠데타 이후엔 독재에 맞섰기에 그만큼 장준하 선생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투철했다고 사람들은 우러렀다.

근래 대한민국 백성 분들의 삶이 휘파람을 불며 언덕을 넘어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일까. 가는 곳마다 임대주택과 빈 집이 늘고 있다. 청년들은 서울과 큰 도시로 일자리를 찾으러 누구에게 끌려가듯 떠나고 있다. 농어촌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가는데 폐가와 폐인이 없으란 법 있겠는가.

일본 식민지 통치라는 암흑 속에서 신음하던 조선민족에게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다시 빛을 발하게 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6행의 시를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영어로 불러주었다. 동아일보는 “조선에 부탁”이라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켜지는 날에/ 너의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타고르가 조선민족을 위해 써준 이 짧은 시에는 평소 그가 동방(the east)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견해가 따뜻한 등불처럼 반영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동방에서 영원한 빛이 다시 빛날 것이다. 동방은 인류 역사의 아침 태양이 태어난 곳이다. 아시아의 가장 동쪽 지평선에 이미 동이 트고 태양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예언적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피렌체 태생의 랜도어는 1895년 발표한 기행문 21장에서 ‘조선인은 감정 표현을 잘 안 하고,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민족이며 비범한 지성으로 다정다감한 마음씨를 지녔다.’고 평가하며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삶의 질과 문화와 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살펴보라고 마트 앞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던 청년은 은유적으로 암시하며 휘파람을 불었던 것은 아닐까!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