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이춘재 정액은 없었다…1400번 턴 '속옷 DNA' 비밀

2025-07-07

부검의 세계 : 더 포렌식 [시즌2]

‘부검의 세계 : 더 포렌식’ 시즌2를 시작합니다. 지난 시즌1에서는 10회에 걸쳐 법의학이 증명한 사건의 진실을 다뤘습니다. 유병언, 노무현 전 대통령, 신해철, 박왕자 사망 사건 등 당시 이들을 직접 부검한 국과수 전·현직 법의관들을 취재해 그간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시즌2에서는 최근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법과학을 다룹니다. 급증하는 마약, 위변조, 급발진, 디지털 사건 등이 모두 법과학의 영역들입니다. 흥미진진한 사건과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얘깃거리를 풀어 가겠습니다.

1화 : ‘터치 DNA’

네이버에서 ‘연쇄 살인’을 검색하면 드라마나 영화, 과거 사건을 다룬 시사물 관련 내용이 뜬다. 유영철·강호순 같은 희대의 살인마는커녕 언제부턴가 연쇄 살인범 관련 뉴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CCTV가 늘어난 영향이 있겠지만 잘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DNA 분석 기법이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봉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최근 취재진과 만나 “무인 매장 절도 사건이 많이 늘었지만 대부분 잡힌다. 손바닥을 마주쳤을 때 떨어지는 DNA까지 분석해 낼 만큼 감정 역량이 우수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가능할까. 시작은 영화 ‘살인의 추억’이었다.

나는 잡을 수 있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

영화에서 뻔뻔한 얼굴로 마지막까지 범행을 부인하던 용의자 박현규(박해일 역). 그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이었다. 201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피해 여성의 유류품에서 그의 DNA를 찾아냈다.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이춘재(62)는 유류품에서 검출된 DNA가 자신의 것으로 확인되자 14명을 살해하고 19명을 강간했다고 자백했다. 화성에서 벌어진 강간살해 피해자만 10명이었다.

경찰력 동원 연 205만 명, 수사 대상자 2만1280명, 지문 대조 작업만 4만116명을 벌이고도 33년간 범인을 잡지 못했던 사건이 국과수의 DNA 분석에 의해 끝이 났다. 가석방을 노리던 이춘재는 영구 무기징역으로 사회와 격리됐다. 그가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저지른 강간·살인죄는 공소시효 15년을 지나 처벌하지 못했다.

사건은 유전자 감식 기술의 발달로 극소량의 DNA도 검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피해자 증거물 어디서 DNA가 발견된 건지, 30년이 다 된 유류품에서 어떻게 DNA가 검출된 것인지, 어떤 검사 과정을 거쳤는지 제대로 알려진 바 없다.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화성 연쇄 살인사건 진범 이춘재의 DNA를 찾아낸 황정희 국과수 연구관을 지난 6월 13일 대전과학수사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는 이춘재 DNA 발견 과정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당시 상황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DNA 분석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해졌는지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범행 후 속옷 다시 입힌 이춘재…DNA 거기 남았다

결과적으로 성공했지만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2019년 5월, 승진자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황 연구관 앞으로 경찰의 질의서가 도착해 있었다.

(경기 남부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에서) 화성 살인사건 용의자 몽타주와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면서 국과수가 사건을 어디까지 감정했고, 당시 DNA 검사한 게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죠. 질의를 해왔어요.

당시 국과수에선 화성 사건 관련 DNA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 건 1986년부터 1991년 사이다. 이때 국과수는 DNA 분석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다. 1990년(9차)과 1991년(10차) 살인사건 증거 분석은 초기 DNA 분석 기술을 도입한 일본에 의뢰됐다. 경찰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증거물을 전부 다시 보내줄 테니 DNA 감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2019년 7월 15일이었다.

10차까지의 증거물 중 1차, 6차는 보관돼 있지 않았다. 아홉 번째 피해자(9차)의 유류물이 맨 처음 도착했다. 13세 여중생이었다.

1990년 사건. 정확히 29년 전이다. 당시 국과수는 DNA가 아닌 혈흔, 정액 등 인체분비물과 혈액형 감정 등을 할 때였다. 감정서를 찾아보니 ‘교복 재킷과 블라우스에 정액 양성 반응’이라고 돼 있었지만 보내 온 증거물엔 포함돼 있지 않았다.

황 연구관은 먼저 팬티에 정액이 묻을 만한 곳을 특정해 실험을 진행했지만 이미 부패가 심해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혈흔이 묻은 부분이 많았다. 젖은 상태에서는 미생물들이 활동해 옷의 해당 부위를 썩게 만든다. 브래지어에서 비교적 깨끗한 부분을 검사했을 땐 피해 여성의 DNA만 나왔다. 보통 입고 있던 옷에선 본인의 DNA가 검출된다.

황 연구관은 무균 처리된 면봉을 이용해 거들 허리 부분의 DNA를 채취했다. 대부분 여성 DNA였는데 미약하게 남성 DNA가 검출됐다. 청신호였지만 신원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거들에서 묻어 나오는 DNA 양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고민이 거듭됐다. ‘DNA 양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DNA를 전사(면봉으로 옮기는 것)하는 것보다 시약에 넣어 DNA를 바로 용해시키는 게 검출량이 더 많다는 걸 알고 그 방법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거들을 14개 조각으로 잘라 증거물이 잠길 정도로 검출 시약을 넣고 DNA를 분리하기로 한 거죠.

(계속)

이런 방식으로 수백 차례에서 1400번까지 DNA를 분리한 결과, 30년 된 속옷에서 뚜렷한 남자 DNA를 확인했습니다.

그 DNA는 대검찰청 교도소 수형자 데이터베이스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춘재.

정액도 아닌데 어떻게 DNA 검출이 가능했을까요.

이춘재가 뒤진 핸드백에서도 범인의 증거를 찾아냈다는데요,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이춘재 찍었다…1400번 뽑은 ‘속옷 DNA’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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