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신 분은 국민의힘으로 이적하셨다.”(28일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27일 개신교 단체 소속 신도 약 23만명(경찰측 추산)이 모여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집회를 열고 야권을 압박하자, 민주당이 하루 뒤 내놓은 반응이다. 2022년 의원총회 안건으로 논의했던 차별금지법에 대해 민주당이 돌연 선을 긋는 모양새다.
이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반대 집회가 열렸다고 하는데, 차별금지법은 22대 국회에서 발의한 의원이 없다”며 “21대 국회에서 이상민 전 의원이 발의했었는데 그분은 국민의힘으로 이적하셨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우리나라는 김건희 특검 관철, 채 해병의 죽음의 진상규명, 미 대선 이후 경제 안보 등 당면 이슈들이 넘쳐난다. 가상의 법을 두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표도 2일 종교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장종현 한국교회총연합 회장이 “민족의 틀을 망가뜨리려는 이 법안(차별금지법)만큼은 막아주셔야 한다”고 부탁하자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다. ‘당장 엄청나게 시급한 일이냐’는 부분에서 고려할 점도 있어서 성숙된 다음에 논의해도 될 것”이라고 답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ㆍ장애ㆍ나이ㆍ출신국가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차별의 피해자에게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인권위가 소송을 지원할 수 있는 내용도 담겨있다. 종교계는 “이 법안은 사실상 동성혼을 합법화해서 가정을 붕괴시키고, 역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등 야권은 인권위가 2006년 법 제정을 권고한 이래 18년 동안 총 10건의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며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왔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도 했었다. 2022년 4월 윤호중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이 땅에 차별받는 모든 분들께 미안하고, 더 이상 여러분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 평등법 제정 논의를 힘차게 시작하겠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법안 공청회(5월), 의원총회 논의(5월) 등이 진행됐다. 당시 지도부의 고위전략회의에서는 당론 지정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전 인권위원장 청문회에서도 민주당은 안창호 당시 후보자를 향해 “차별금지법에 왜 반대하냐”며 공세를 폈다. 특히 “차별금지법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안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1924년 얘기인 줄 알았다. 개탄스럽다”(전용기 의원)거나 “차별 받는 사람이 소수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항변해 주셔야 될 의무가 있다”(고민정 의원)는 등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민주당의 태세 전환은 ‘김건희 리스크’, ‘명태균 게이트’ 등 여권의 지속되는 악재 속에서 전선을 흐트러 뜨리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은 대통령 탄핵 국면 초입에 가깝다. 웬만한 이슈들은 덮어두자는 의견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자칫 보수층을 결집시키거나 중도층이 이탈할만한 이슈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에서는 “당의 DNA인 진보적 가치를 다 포기하겠다는 것이냐”는 불만도 쌓이고 있다. 한 수도권 의원은 통화에서 “여당의 악재 속에서도 지지율이 횡보하고 있으니 중도 확장을 위해 우클릭을 할 순 있다”면서도 “금투세 등 민생이슈가 아닌 이념적 정체성까지 포기하다보면 국민의힘을 비판할 자격이 없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