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보훈부가 최근 고(故) 박진경 대령에게 국가 유공자 증서를 발급한 것으로 9일 파악됐다. 박 대령에 대해서는 제주 4·3 사건 당시 진압을 이끈 것과 관련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데, 특히 진보 정부에서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은 데 대해 유족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고인의 무훈을 기리겠다고 밝혔다.
보훈부는 지난 10월 20일 서울보훈지청장 명의의 ‘국가유공자 등록결정 안내문’을 통해 “故 박진경 님을 국가유공자법 제4조제1항7호(무공수훈자) 적용 대상자로 결정했다”고 박 대령 유족에게 통보했다. 해당 조항은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 대령 유족은 같은 날 무공훈장 수훈 등을 근거로 보훈부에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해달라고 신청했다. 이에 보훈부가 이를 당일에 받아들인 것이다.
박 대령의 양손자인 박철균 동국대 교수(육군 예비역 준장)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면서 국가 유공자라는 점을 확인받았다. 현 정부에서 국가 유공자라는 걸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제주에 주둔한 9연대장으로, 진압 작전을 이끌다 암살됐다. 남로당 세포였던 휘하의 문상길 중위가 손선호 하사에 지시해 자고 있던 박 대령을 소총으로 살해했다. 박 대령의 장례식은 육군장 제1호로 치러졌고 문 중위, 손 하사는 재판을 거쳐 그해 9월 사형에 처해졌다. 정부는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30일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전몰군경(戰歿軍警)으로 인정받은 박 대령은 현충원에 안장됐다.
그간 박 대령의 행보를 두고 강경 진압으로 양민도 체포한 토벌 작전을 펼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만 최근 박 대령을 재조명한 ‘건국전쟁2(감독 김덕영)’ 등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평가가 왜곡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엇갈린 평가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제주에 세워진 박 대령 추도비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유족들을 이를 막기 위해 박 대령을 국가 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보훈부에 신청했다고 한다. 박 대령이 국가유공자라는 사실이 명확해지면 추모비가 현충 시설로 지정될 가능성이 생기는 만큼 훼손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현충시설 심의위원회는 해당 시설 소유자나 관리자가 신청할 경우 심의를 거쳐 현충 시설 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보훈부는 지난달 4일 이재명 대통령 명의의 국가 유공자 증서를 박 대령 유족 측에 전달했다. 증서에는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린다”고 적혔다. 이 증서를 국가유공자증부에 기재한다는 문구도 담겼다.
보훈부 관계자는 “박 대령은 전몰군경으로 원호대상자(현 국가유공자)로 등록이 돼 있었다”며 “이번에 무공수훈자로 국가유공자 등록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령에 대한 수훈이 이뤄질 때는 없었던 국가유공자법은 기존의 군사원호보상법·국가유공자등특별원호법 등 7개 법률을 통폐합해 1984년 8월 2일 공포됐다.
박홍균 고 박진경 대령유족회 사무총장은 “박 대령은 선무 공작 위주로 진압 작전을 진행하다 암살당했다”며 “그런데도 제주 4·3 관련 단체 등에서는 박 대령을 제주4.3사건의 원흉, 무차별적 양민 학살범으로 취급해 왔는데, 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국가유공자라는 걸 확인해준 것은 사실에 근거한 행정행위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박 사무총장은 “국가 유공자로 인정된 만큼 추모비 훼손 등 박 대령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중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