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중동 휴전’ 결의안과 한국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6-23

유엔에서 뭔가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은 소수 회원국으로 꾸려진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뿐이다. 회원국 모두가 참여하는 총회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국내 정치에 비유하자면 총회는 하원, 안보리가 상원인 셈이다. 안보리 15개 이사국은 5대 상임이사국(미국·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과 기타 10개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한국은 윤석열정부 시절인 2023년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상임이사국으로 뽑혀 2년 임기(2024년 1월1일∼2025년 12월31일) 동안 안보리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등 비상임이사국들과 달리 5대 상임이사국은 1945년 유엔 창설 때부터 80년간 안보리에 관여해왔다. 유엔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비상임이사국이 ‘임기제’의 적용을 받는다면 상임이사국은 일종의 ‘종신직’인 셈이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특혜인데 상임이사국들에겐 한 가지 특권이 더 있다. 바로 거부권(veto power)이다. 안보리가 어떤 사안을 결정하려 할 때 거부권을 지닌 미국·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 5개국 중 어느 한 나라만 반대해도 안건이 부결된 것으로 간주한다. 함께 안보리에 몸담고 있어도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의 지위에는 이처럼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중동의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이 2023년 10월부터 벌써 3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일 유엔 안보리는 가자지구 휴전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는데 15개국 중 14개국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채택이 무산됐다.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동맹인 미국을 지지하는 대신 찬성표를 던졌다. 이는 팔레스타인의 처지에 동정적인 제3세계 국가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를 의식한 선택으로 풀이됐다. 설령 한국이 찬성하더라도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은 어차피 부결될 운명이란 계산도 한몫했을 것이다.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미군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습했다. 하루 만인 22일 소집된 유엔 안보리 긴급 회의에서 ‘미국의 행동이 과연 적절했느냐’를 놓고서 이사국들 간에 격론이 오갔다. 중국과 러시아는 중동에서의 즉각적·무조건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 초안을 공동으로 만들어 안보리에 제안했다. 표결이 이뤄지면 한국은 이번에도 미국 지지냐, 아니면 휴전 지지냐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과 세계 평화라는 두 가지 대의(大義) 가운데 이재명정부가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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