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신경철 기자) 국내 우유 시장에 큰 변화의 파도가 예고됐다. 2026년부터 미국과 EU산 멸균우유(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전면 철폐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관세가 일정 부분 완충 역할을 해왔지만, 무관세 전환으로 수입 멸균우유의 가격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국내 낙농·유가공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을 서두르고 있다.
◆ 관세 철폐로 열릴 멸균우유 완전 개방
한·미 FTA와 한·EU FTA 협정에 따라 미국산 멸균우유는 2026년 1월 1일, EU산은 2026년 7월 1일부터 관세가 0%가 된다.
현재 미국산에는 2.4%, 유럽산에는 2.2%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데 내년에는 이마저도 완전히 사라진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 수입 우유에 남아 있던 마지막 가격 장벽이 제거된다는 의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산 우유가 수입산에 비해 품질이나 브랜드 측면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값싼 수입 우유에 점차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관세 인하의 체감폭은 얼마나 될까. 평균 CIF 수입가를 L(리터)당 0.75~0.79달러, 환율을 1400원으로 가정하면 2.4% 관세가 사라질 때 L당 약 30원의 원가 인하 요인이 생긴다. 절대값은 크지 않지만, 이미 존재하는 국산과 수입산의 가격 격차를 더 굳히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급증하는 수입 멸균우유…가격은 ‘반값’
관세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부터 수입 멸균우유는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을 빠르게 키워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의 농업전망 2025’에 따르면 2024년 멸균우유 수입량은 약 4만 9천 톤으로 전년 대비 30% 이상 급증했다. 2019년 처음 연간 1만 톤을 돌파한 뒤 5년 만에 약 5배로 늘어난 것이다.
가격 면에서도 수입 멸균우유는 압도적인 가성비를 앞세워 시장을 파고든다. 국내산 신선우유의 평균 소매 가격이 L당 3000원대인 반면, 대표적 수입산인 폴란드산 멸균우유는 L당 1300~1900원 선에 불과하다.
지난해 국내 우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카페업계와 소비자가 ‘반값’ 수준의 수입 멸균유로 눈을 돌리는 흐름도 뚜렷해졌다.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특성상 1인 가구 등에서도 선호가 높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소비자 조사에서도 “수입 멸균우유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22.5%였다. 이유로는 “국산 우유보다 보관이 편리해서”(60.9%), “가격이 저렴해서”(26.4%)가 주로 꼽혔다. 저렴하고 편리한 대안으로 부상한 수입 멸균우유의 공세에 국내 우유 시장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 멸균우유(UHT, Ultra-High Temperature)란?
130~150℃의 고온에서 0.5~5초간 우유를 순간 가열한 후 무균 상태로 팩에 충전한 우유를 말한다.
초고온 멸균 처리하면 우유 속 모든 미생물을 제거해 상온에서도 장기간 보존할 수 있다. 일반 살균우유(냉장 우유)가 2주 안팎의 유통기한을 갖는 데 비해, 멸균우유는 6개월에서 최장 12개월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크림화(유지방 입자가 뭉치는 현상)로 신선한 맛이 떨어질 수 있어, 국내 업체는 보통 3개월 안팎으로 소비기한을 관리한다.
◆ 폴란드의 전략적 공습…가격만이 아니다
KREI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수입 멸균우유의 원산지 비중은 폴란드 90.0%, 호주 3.7%, 독일 3.7%, 프랑스 2.1%였다. 같은 해 멸균우유 평균 수입단가가 0.79달러/kg, 폴란드산은 0.75달러/kg로 가장 낮다.
폴란드산이 한국 시장을 석권한 배경에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도 있다. 폴란드 투자무역청 서울사무소의 안나 와도진스카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폴란드는 한국을 역동적이고 잠재력이 큰 유제품 수출시장으로 여기고 있다”며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소비자의 신뢰와 친숙도를 쌓기 위한 장기적 전략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폴란드 정부와 업계는 한국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서울 국제식품산업전 참가, 현지 시음 행사 개최, 레시피 콘텐츠 제공 등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2022년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불과 2년 만에 수출량과 수출액이 모두 약 두 배 이상 증가한 점도 주목된다.
폴란드산 제품은 자연방목 기반의 원유 생산, 엄격한 품질관리(EU 규격) 등을 내세워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프리미엄급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이 낮다”는 점이 폴란드 유제품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각된다.
이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우유’로 어필하며 수입 우유에 대한 거부감을 낮추는 효과를 내고 있다.

◆ 국내 낙농업계의 고민과 생존 전략
반면 국내 낙농업계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는 평가다. 한편으로는 저출산으로 전통적인 우유 소비층인 아동 인구가 줄어들며 국내 수요가 정체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값싼 외국산 멸균우유가 밀려들어와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실제 2023년 1인당 흰우유 소비량도 25.9kg로 10년 전에 비해 6.5% 줄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우유 소비 감소와 수입산 증가가 맞물려 국내산 우유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돌파구는 가격 외의 가치와 원가 혁신에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과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주요 유업체는 프리미엄 라인업(목장형·기능성 등) 확대와 채널·규격 혁신(소용량·정기구독·바리스타 전용 멸균 등)으로 접점을 넓히고 있다. 카페나 베이커리 등 B2B 시장에서 수입 멸균우유를 사용하는 사례가 늘자, 이에 맞서 국산 멸균 제품의 전용 패키지와 공급 라인도 강화하고 있다.
정책 측면에서도 원가 부담 완화를 위한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우유의 사용 목적에 따라 가격을 구분하는 ‘용도별 원유 가격제’를 도입해, 가공용 원유의 기준가격을 L당 882원으로 책정했다. 음용유용(직접 마시는 우유)은 여전히 1084원/L 수준이지만, 가공용 단가를 낮춤으로써 유가공업체의 부담을 완화한 것이다.
2026년 관세 0%로 촉발될 완전 개방 시대는 분명한 도전이다. 그러나 품질·신선도·지역 생산이라는 국산의 강점을 강화하고, 프리미엄 전략과 효율화로 무장한다면 소비자 선택을 받을 여지는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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