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
김홍중 지음
이음
세계에 대한 믿음
김홍중 지음
문학과지성사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 분석 결과라니 할 말 없지만, 계엄 야만을 막아낸 시위 군중 가운데 K팝 응원봉을 앞세운 2030 여성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다고 해서 새로운 시위 문화 정착 운운하는 건 공허하게 느껴진다. '경쾌한 저항'이라는 표상에는 만에 하나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성난 군중의 격렬함이 삭제돼 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의 저자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20세기를 거슬러 물수제비처럼 간헐적으로 발생했던 4·19, 80년 광주와 87년, 2008년과 2016년의 촛불 등 대규모 시위는 억압됐던 사회적인 것들의 귀환이었다. 억압은 소멸이나 무화(無化)로 귀결되지 않고 무의식의 어둠 속에서 더욱 극단적인 표현을 얻는다. 한가한 먹사니즘이 아니라 나날이 비상상황이고 일상이 생존 투쟁인 상황에서, 배제하거나 억압했던 연대와 공존 같은 사회적 가치들이 예외적인 사건들을 만나 강렬하게 회귀한 게 폭력성을 동반한 항쟁들이었다는 것이다.
불구덩이 같은 현대사를 지나오며 '생존의 대가'로 재탄생한 한국인들에게 신뢰 같은 사회적 자본이 크게 부족하다는 진단은 새롭지 않다. 각자도생은 그런 사태를 압축한 표현이다.
김홍중은 20세기 중후반 한국사회의 지배적 정신성, 민중은 물론 엘리트들까지 움직인 근본 사상이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생존주의라는 데까지 나간다. '사상'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그 구조의 정식화를 시도했다. 욕망의 흐름, 통치성, 심리-레짐이라는 세 가지 상이한 리얼리티로 생존주의가 이뤄져 있다는 것이다.
생존하겠다는 절박한 욕망은 심리학적 극장이 아니라 사회적 공장이다. 생존 방편 마련이라는 사회적 생산으로 연결된다. 통치성은 권력의 통치 행위 혹은 통치 방식. 심리-레짐은 마음을 쓰고 먹고 열고 다스리는 패턴이다. 쉽게 말해 민중의 생존 욕망에 권력이 개입해 개인의 행동양식으로 주조해낸 게 한국인들의 생존주의라는 얘기다.
이질적 시공간이 공존하는 '압축적 근대성', 정치권력과 경제적 부에 과도하게 치우친 '환원근대' 등 한국적 근대, K-모던을 해명하려는 학계의 노력이 그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 거시적인 틀로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고투와 좌절, 환멸과 욕망, 기쁨과 슬픔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게 김홍중의 문제의식이다.
마음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2009년 『마음의 사회학』, 2016년 『사회학적 파상력』)에서 출발해 생존주의라는 인식틀을 고안해낸 데서 그치지 않고 역사와 예술, 예외적인 개인들에게 들이댔다. 박정희의 통치술(4장), 정주영의 자본주의 정신(5장), 박완서의 소설(1장)과 괴짜 감독 김기영의 영화(2장)를 생존주의로 독해했다. 정권의 생존주의적 통치성에 대한 민중의 저항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언급한 대목(7장)도 인상적이다.
출판사를 달리해 펴낸 『세계에 대한 믿음』과 『서바이벌리스트…』의 연결은 희미하다. 고급 영화 에세이 묶음이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타자의 시선이 우리에겐 필요한데, 영화에서 그런 시선을 얻는다고 했다. 박찬욱 등 영화감독 7명의 세계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