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휴가를 다녀온 게 67년 전이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단 하나의 비문에 아무것도 쓰지 말며 ‘프란치스쿠스(Franciscus)’ 자신의 이름만 라틴어로 쓰라고 하였다. “내 지상에서 삶의 석양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살아 있는 희망을 지닌 채…”라고 시작되는 유언장을 남기셨다.
내게 이승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무엇이 좋을지 새겨질 비문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바로 지금 연재하고 있는 여행 에세이의 타이틀 ‘훌훌 훨훨’이란 네 글자이다. 백세 시대이지만 마지막엔 그 육신이 사라지고 행여 영혼이 남는다면 훌훌 훨훨 자유롭게 떠나라는 의미를 생각했다. 지난 3월 엄마께서 훌훌 훨훨 이승의 여행을 마치고 먼 길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비롯하여 장례를 치르며 몇 번의 화장을 지켜보았지만 관에 실려 들어가는 엄마를 배웅한 지 한 시간 남짓한 순간에 엄마의 육신이 사라지는 일은 상상 이상의 충격이었다. 한 줌 뼛가루만 남기고 이승에 적을 둘 수 없는 영혼은 훌훌 훨훨 또 다른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을 것이라 살아있는 자들은 스스로를 위로했다.


요즘 한 달 살기나 일 년 살기가 유행이다. 지금 노년 세대들이 분투하며 다만 생존을 목적으로 가족을 위한 희생적인 마음으로 여유 없이 살아왔다면 시대와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젊은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려 노력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한 삶을 추구한다. 언젠가부터 제주도를 비롯해 생활비를 절약해서 살 수 있는 치앙마이 같은 동남아 등지로 많이 떠난다. 인구가 줄고 있는 지자체에서도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있는 추세다. 진정 직장에 매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한 곳에 정주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기도 했다. 건강한 나이에 퇴직을 하는 인구도 늘어나고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뀐 영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태초에 정착하기 전의 인간은 본디 유목민 노마드이지 않았나. 돌고 돌아 회귀하는 시대가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평균 연령 77세 할머니 네 분이 울산에 한 달 살기를 오셨다. 젊은이들도 아니고 한 달이란 기간은 꽤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다. 할머님들의 무모하다면 무모한 도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엄마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가 한국에 귀국할 즈음, 다니던 한인교회 잘 알고 지내던 할머니들께서 한국에 한 달 살기를 오고 싶다고 한 것이다. 한국 국적을 잃고 미국 시민으로 산 지 모두 사오십 년이 넘으신 분들이다. 자주 고국에 들어오는 언니조차도 올 때마다 먹었던 음식, 방문했던 장소, 모든 것을 깡그리 잊고 올 때마다 처음 먹은 사람처럼 처음 가보는 장소처럼 다니는 것을 보고 고국에 대한 향수병은 조절할 수 없는 본능에 가까운 마음이려니 생각한 적이 있다.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일 것이다. 하물며 더 오랜 시간 낯선 이국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은 문화 속에 수십 년 살아온 할머니들이야 오죽 고국에 오래 머물고 싶을까. 그 마음의 공감에 언니가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숙소를 알아보고 주위의 우려를 뒤로하고 항공권을 예약해준 것이다.
실은 목적지를 도착해서의 시간보다 준비하고 오시게 된 과정이 더 힘드셨을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면 젊은 친구들도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 긴 여행을 하고 오면서 다투고 오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물며 자신의 생활 습관이 더 오래 몸에 배어 더 고집스러워졌을 할머니 네 분이 과연 동거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건강하다시지만 연세가 다들 만만치 않으시니 아프지 않고 한 달을 여행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염려였다. 시작이 창대했으니 겪고 부딪혀 보리라. 드디어 마침내 무사히 미국 네바다주 리노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 인천 공항을 거쳐 24시간 만에 울산에 늦은 밤 도착하셨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을 다들 방문하시는 분들이다. 주로 서울 등지로 다녀가셨지 친구들과 이리 오래 그것도 지방 도시에 오래 머무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숙소는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어있는 태화강 십리대숲 근처를 잡았다. 언제라도 집 앞에 펼쳐진 정원 산책길을 거니실 수 있도록 했다. 피곤을 모르고 도착 다음 날 새벽부터 일어나 태화강변을 거닐며 울산은 처음인데 복잡한 대도시보다 훨씬 좋다며 감탄을 하신다. 경주 부산 대구가 한 시간 거리에 있고 바다 산 들 정원이 지척에 있어 다양한 자연에서 쉼을 누릴 수가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안내를 해드리면서 내 사는 곳이 이리 아름다운 곳이었나 타인의 눈을 빌려 나도 바라본다.
할머님들은 올 때마다 한국의 발전에 놀랍다는 말씀을 하셨다. 특히 화장실이나 청결, 친절 면에서도 무척 만족하셨다. 달러 환율의 상승으로 물가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끼신 부분도 있을 것이다. 팁 문화가 있는 미국에서 간단한 점심 한 끼에 이삼만 원 정도로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반면 한국의 식탁을 채우는 반찬의 가짓수와 맛, 가격, 어느 식당을 가도 ‘오 마이갓’ ’원더풀’을 연발하셨다.
오신 분들은 미국 한인교회에 다니며 친분을 쌓으신 분들이다. 딸 열 몇에 막내인 할머니는 이름이 ‘말순‘이고, 또 한 분은 시골에서 살며 태어나는 동생 다섯을 다 업고 키우며 빨래를 하도 해서 앉는 자세가 여느 분들과 다르셨다.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함께 살면서 속내를 터놓는 시간이 뭉클했다. 그 시절 사연 없이 타국에서의 삶을 수월하게 시작하지는 않았을 거라 짐작했지만 모두 소설 속의 주인공이시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한갓지게 다니실 정도로 여유 있는 삶을 누리시는 분들이지만 말이다.
할머님과 다니면 모든 속도는 느려진다. 밥을 먹는 식당에서도, 버스를 타고 내리는 장면도, 상점에서 돈을 계산하고 물건을 고르는 속도도 느려진다. 누구나 미래에 자신에게 닥치는 일이지만 경험하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이 늙음이 아닌가. 육체적인 노화도 있지만 인지면에서도 많이 떨어져 천천히 기다려 주어야 한다. 울산도 곧 65세 인구가 25%를 넘는다. 주위를 돌아보면 노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병원에서도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시장에서도 쉬 마주친다. 내 어머니 병간호를 할 때도 이번 할머님들을 돌봐드릴 때도 느꼈지만 노인 분들의 속도를 기다리는 일에 완벽하게는 불가능하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또 하나는 세대와의 소통이 단절된다는 느낌이었다. 친절과 불친절과는 다른 말인데 소외에 관한 부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모두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모든 것을 스마트 폰으로 예약하고 결재하고 검색하고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체계는 세상의 속도로 여지없이 당연한 듯 흘러가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분명 노인을 위한 시스템을 따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생각해보고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이 절실했다. 섬에 사는 섬 주민들이 육지에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불편하지 않도록 교통 시설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것처럼 그것은 미래의 우리에 대한 인권 존중의 차원이기도 하다. 할머님들이 스스로 바보라고 자책을 많이 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에서의 음식은 다 싱싱해서 입맛을 돋우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조금 불편하셔도 늘 감사하며 찬탄을 연발하며 지내시고 계시다. 하지만 즐거운 일만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예상 밖의 큰일도 닥쳤다. 수년 동안 눈이 침침하고 섬광이 있었던 증세를 묵과하고 미국에서 지내신 한 분이 여행 중 급작스레 망막박리라는 위중한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 최대한 빠른 시간에 수술을 하시고 회복 중에 계신다. 넷에서 셋이 다니는 여정이 되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이만하게 마무리된 것도 감사하자며 슬기롭게 보내신다. 팔십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겪으며 사셨을까. 누구도 울지 않고 기도하며 지혜롭게 고국의 한 달 살기를 이어가고 계신다.
할머님들께 의미 있는 이 여정을 매체에 소개해도 되겠는지 여쭈었더니 다들 멋진 추억이 될 것이라며 잔뜩 설레어 계신다. 어떤 일이 생기게 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아슬아슬 짜릿한 여정. 후에 미국으로 돌아간 할머님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고요한 날들이 오면 이 여행을 무척 그리워할 것이다. 고국에서의 좌충우돌, 5일장 장보기, 라이프 스타일의 차이로 다투었던 일, 한국의 친절한 목사님과의 인연, 새벽 배송의 신기함, 네일 샵 직원들의 친절함, 그 중에서도 고국의 사람들에게 받은 친절과 정, 평생을 누구에게도 잘 말하지 못했을 이국 생활의 향수나 쓸쓸함이 얼마만큼은 치유되셨을까. 아직 보름의 여정이 남았다. 수술을 받은 할머니의 쾌유를 빌며 이제 어디를 가시든 ‘훌훌 훨훨’ 여행을 떠나실 수 있는 자유로운 마음과 용기를 잊지 않으셨으면 바란다.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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