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난임부부 시술비를 기존 난임부부 당 25회에서 출생아 당 25회로 대폭 확대 지원한다는 소식이다. 도는 지난 5월 전국 최초로, 난임 시술을 중단해도 발생하는 의료비를 1회당 50만 원 지원의 횟수 제한을 없앴다. 국가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가파른 인구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경기도의 이 같은 정책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4일 도가 발표한 저출생 위기 극복을 위한 난임 시술비 지원책에 따르면 ‘난임부부 당 총 25회’로 제한됐던 체외수정, 인공수정 등 시술 지원이 ‘출생아 당 25회’로 늘어난다. 난임 시술로 첫 아이를 가지면서 최대 지원 횟수 25회를 지원받았더라도 둘째, 셋째 등 아이를 가질 때마다 25회씩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이달부터는 의료적 이유 등 비자발적 사유로 난임 시술이 중단될 경우 최대 110만 원까지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경기도는 자체적으로 지난해 7월 ‘소득 기준’에 이어 올해 1월 ‘거주기간’ 요건도 지원 대상 조건에서 폐지했다. 올 2월에는 지원 횟수를 최대 25회로 확대했고, 6월에는 나이별 차등 지원을 폐지하는 등 지원 폭을 계속해서 파격적으로 넓혀왔다.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은 결코 무시하기 힘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기준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 혜택을 받은 경기도 출산 건수는 7751건으로 쌍둥이 등 다태아를 포함하면 모두 9075명이 출생했다. 이는 전체 출생아 7만541명 12.9%로서 7.7명 가운데 1명꼴로 난임부부 시술을 통해 아이를 출산한 셈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앤 윌리엄스 명예교수가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들여다보고 내놓은 “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는 반응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윌리엄스 명예교수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합계출산율의 가파른 하강 패턴 때문이다. 한국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이 지난 2018년 1.0명 아래로 떨어진 후 계속 감소해 2022년에는 0.78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0.68명으로 예측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출산 기피 풍조로 인한 인구소멸 난제를 성공적인 정책으로 극복한 나라들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싱가포르가 1970년대부터 시행해 온 주요 저출산 대응 정책은 출산 장려금 지급, 육아 휴직 시 급여 일부 지원, 유치원 무상교육 등이다. 아이슬란드의 대책은 좀 독특하다. 1980년대부터 성평등 정책을 강화해 온 아이슬란드는 성평등 교육, 양성평등 고용정책 등을 펼쳐 왔다. 아이슬란드의 ‘성평등 강화’ 정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프랑스는 2022년 기준 약 330만 명이 난임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추산하에 43세 이하 난임 진단을 받은 모든 여성에게 건강보험을 통해 무료로 시술을 제공한다. 2021년 6월에는 독신 여성과 여성 동성애자 부부들의 난임 시술도 건강보험으로 전액 보장해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 합계출산율은 1995년 1.7명까지 떨어졌지만 2021년 1.84명까지 늘었다.
2021년 합계출산율 1.61명인 영국의 지원 정책은 더 적극적이다. 국영의료시스템(NHS)을 통해 난임 시술을 최대 3회까지 100% 지원한다. 2년 이상 자연 임신에 실패한 만 40세 이하 모든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하지만 사실상 엄격한 나이 제한은 없다. 영국 정부는 또 1990년 세계 최초로 보건부 산하에 인간생식배아관리국(HFEA)이라는 생식 전문 기관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HFEA는 난임 관련 연구소를 별도로 두고 꾸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경기도의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대폭 확대는 인구소멸 위기가 지방소멸, 국가소멸 위기로 치닫는 마당에 자랑할 만한 정책이다. 꼼짝없이 고령화사회로 몰려가며 노쇠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나라의 미래를 지탱하기 위한 정책은 더욱 과감하게 추구돼 반전 기적을 일궈야 한다. “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놀라워하던 조앤 윌리엄스 명예교수 앞에 기적적인 합계출산율 기록을 들이밀어서 한 번 더 깜짝 놀라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