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1회 15초면 끝” 알츠하이머, 셀프케어 시대 열리나[안경진의 약이야기]

2025-03-16

“우리도 치매 보험 하나 들어둘까 하는데, 니 생각은 어떠니?”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서 엄마의 말 한마디에 치매가 밥상머리 화두에 올랐습니다. 올 초 흥국화재가 보험업계 최초로 ‘표적 치매 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을 출시했다는 기사를 보신 모양이더라고요. 치매를 걱정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으면서도, 며칠 전 내년 치매 환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기사를 쓴 저로선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알츠하이머 신약 덕분에 이런 고민도 할 수 있게 됐으니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사안은 아닙니다.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개발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의 등장은 수십 년간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축적되는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2개 이상 합쳐진 올리고머를 제거해 병의 진행과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단일클론항체입니다. 단순히 치매 증상을 완화하는 데 머물렀던 기존 약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되죠. 과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던 베타 아밀로이드 가설이 건재함을 입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레켐비는 작년 말 국내에도 발매돼 일선 병원에서 처방하고 있습니다. 다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싼 약값이 치료를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환자의 체중을 50㎏이라고 가정하면 한달 약값만 200만 원 가량 드는데, 약 처방에 필수적인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 검사 등을 고려하면 연간 치료비용이 3000만 원을 훌쩍 넘게 되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당장 올해 치매 환자는 97만 명, 치매 고위험군인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298만 명에 달합니다. 고령화로 매년 환자 수가 급증할 전망이어서 건보 적용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는데요. 민간에서 이런 보험상품을 내놓은 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켐비는 뇌출혈·뇌부종 등 부작용 논란에도 지난해 324억 엔(약 3200억 원)의 글로벌 매출을 올리며 순항 중입니다. 해외에서는 일라이릴리가 레켐비의 후속약물 격인 ‘키순라(성분명 도나네맙)’를 개발해 미국·일본·영국·중국에서 승인을 받았습니다. 임상시험 도중 3명이 숨지는 등 안전성 문제에서 자유롭진 못하지만 6개월 투여 시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35% 지연시켜 레켐비(27%)보다 뛰어난 효과를 보였죠. 발매되자마자 강력한 경쟁상대를 맞닥뜨린 에자이는 제형변경으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한달에 한 번 정맥주사하는 새로운 제형을 승인 받은데 이어 환자 스스로 주사할 수 있는 ‘오토인젝터’ 개발도 완료했다고 해요. 미 식품의약국(FDA)은 8월까지 주1회 피하주사하는 레켐비 유지요법의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주사 과정은 평균 15초 정도라고 해요. 국내 도입되기까지는 몇 년 더 걸리겠지만 치매 환자가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직접 약을 주사할 수 있다니, 정말 획기적인 일이죠?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치매 치료의 부담이 더욱 줄어들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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