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부실기업을 강매하지 말라

2025-11-30

한때 미국에서 월마트와 함께 양대 할인점으로 꼽히던 유통 업체가 있었다. 바로 K마트다. 1962년 탄생한 K마트는 같은 해에 설립된 월마트·타깃과 함께 미국의 대형 할인점 시대를 개척했다. 하지만 물류 및 정보기술(IT) 투자에 실패하고 무리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다가 매출 부진과 부채 누적이 이어지면서 2002년 파산보호절차(Chapter 11)를 신청했다. 당시 K마트의 자산은 163억 달러(약 20조 3750억 원), 부채는 103억 달러(약 12조 8750억 원)로 미국 소매 업체 파산 사례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후 K마트는 주요 채권자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에디 램퍼트의 주도하에 자산 매각, 대규모 점포 폐쇄 등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섰고 파산보호 신청 15개월 만인 2003년 5월 재기에 성공했다. 2004년에는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와 합병해 유통 왕좌를 다시 노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합병은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두 기업의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과 온라인 대응 부진이라는 약점만 더했다. 결국 합병 지주사인 시어스홀딩스도 2018년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K마트와 시어스는 수많은 점포를 폐쇄했고 지난해 미국 본토에 남아 있던 마지막 대형마트까지 문을 닫았다.

국내에서는 홈플러스가 K마트와 비슷한 길을 걷는 듯하다. 대형마트 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는 올해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자산을 담보로 조 단위의 대규모 차입을 하면서 이자 비용에 따른 재무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e커머스와의 경쟁 심화와 정부의 대형마트 영업 규제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삼일PwC가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3조 6816억 원)가 계속기업가치(2조 5059억 원)보다 높다. 법원이 고용 안정과 협력사 보호 등을 이유로 홈플러스의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승인했지만 공개 매각도 불발됐다. 11월 26일 마감된 홈플러스 인수 본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예비입찰에 하레스인포텍·스노마드 등 두 곳이 참여했지만 인수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이들도 본입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홈플러스는 다섯 차례나 연기된 회생계획안 제출일(12월 29일) 전에 적합한 인수자가 나타나면 매각절차 연장, 회생계획서 제출 기한 연장이 가능할 것이라며 여전히 M&A에 희망을 거는 분위기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몸값 자체가 너무 비싼 데다 유통 산업의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에서 인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홈플러스의 실적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운영자금 차입을 포함해 금융 부채만 2조 원에 이른다. 종합부동산세·지방세 등 세금 920억 원도 미납했다. 입점 업체에 지급할 10월 매출 정산금도 제때 주지 못해 12월로 미룬 상태다.

급기야 정치권이 나서 농협중앙회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10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어기구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에게 ‘공익적 관점’에서 홈플러스 인수를 검토하라고 제안했다. 여론까지 앞세워 농협에 홈플러스를 강매하는 모양새다. 최근 리얼미터가 18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8.8%가 홈플러스 인수 적합 기업으로 농·축협 유통 기업을 꼽았다고 한다.

문제는 하나로마트 역시 적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유통과 하나로유통도 각각 연간 400억 원의 적자를 내고 직원을 200명 이상 구조조정했다. 여기에 10배나 더 큰 적자를 내는 홈플러스를 떠넘긴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될지 의문이다. 농가 보호와 물가 안정을 목적으로 농산물을 매입하는 농협과 하나로마트의 구조도 대형마트의 상품 조달 과정과 달라 인수 이후 통합 소싱 등 시너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부실 기업들의 합병은 더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다. 정치권은 홈플러스 매각을 강요하기에 앞서 대형마트 산업에 대한 낡은 규제부터 철폐해야 한다. 마트와 전통시장 모두를 문 닫게 만드는 해묵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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