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경기 화성의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공력시험동. 전기차 아이오닉6을 닮은 실험용 차가 시속 60㎞의 바람을 버티고 서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흐름을 시각화하기 위해 뿌려진 하얀색 연기가 유선형 차체를 타고 부드럽게 흐른다.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콘셉트카 ‘에어로 챌린지 카’로 공기저항 계수가 0.144 항력계수(Cd)다. 중국 체리자동차가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자부하는 콘셉트카(0.168 Cd)보다 공기저항계수가 낮다.
비결이 무엇일까. 와이퍼가 장착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와류를 막기 위해 보닛 안쪽 끝에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액티브 카울 커버’가 달렸다. 차량 뒤편 좌우 후미등 옆에는 칼날 모양의 40㎝짜리 사이드 블레이드가 장착돼 측면 와류를 억제한다. 남양연구소는 최대 풍속 200㎞로도 이런 실험을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기저항을 0.01 Cd 낮추면 주행가능거리가 6.4㎞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이 핵심 연구·개발시설인 남양연구소를 23일 언론에 공개했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관세에 따른 2분기 영업이익 15.8% 급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한·미 무역협상, 대미 전기차 수출 88% 감소 등 악재를 겪고 있다. 하지만 핵심 연구시설을 공개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력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날 공개된 연구개발 시설은 전기차 기술력을 검증하기 위한 핵심시설이다. ▶공기저항계수(공력시험동) ▶주행성능(R&H성능개발동) ▶고온·저온 내구성(환경시험동) ▶소음·진동·승차감(NVH시험동) 테스트 현장을 차례로 둘러봤다.
두 번째 시험장은 전기차를 영하 30도 환경에서 차를 얼리는 환경시험동 강설·강우환경풍동이었다. 전기차는 극저온환경에서 배터리 효율이 감소하고, 결로 발생으로 전자장비가 고장 날 수 있다. 충전구가 얼어붙을 경우, 충전도 어렵다. 이에 눈과 비바람을 20분간 뿌리며 테스트를 한 뒤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는 것이 이 시설의 용도다. 현대차 관계자는 “충전구가 앞에 있느냐, 뒤에 있느냐에 따라 가혹도가 다르다. 테스트 후 문제점을 찾으면 고무실링 등을 통해 유입 부분을 재마감한다”고 했다.
로드노이즈실험실(NVH시험동)에서는 주파수를 파악해 외·내부 소음을 잡고, 핸들링주행시험실(R&H 성능개발동)에서는 북미(서부·동부), 중국 등의 노면을 본뜬 패널 위에서 실차를 고속회전시켜 조향성, 주행성능을 시험했다.


현대차·기아는 2016년 현대 아이오닉5를 출시하며 순수전기차 시장에 발을 들였다. 테슬라(2008년), 닛산(2010년) 등에 비하면 뒤늦은 축이다.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기존 내연기관차에 쓰이던 남양연구소의 연구·개발 시설을 전기차 실험에 쓰고 있다. 예컨대 강설·강우환경풍동은 2003년 정몽구 당시 현대차그룹 회장이 “왜 우리에겐 이런 시설이 없냐”고 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남양연구소는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개발의 산실”이라며 “최근에 지어진 중국 전기차업체 것이 더 최신 시설이지만, 현대차는 20년 이상 축적한 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차량을 만들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