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1월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유럽우주청(ESA) 각료 이사회 직후, 프랑스 재무장관 브뤼노 르메르는 ‘아리안 6호’의 개발 지연을 개탄하며 로켓 개발 방향을 재사용으로 제시한다. “우리는 10여 년 전 재사용발사체를 개발하지 않는 선택을 했습니다. 잘못된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올바른 길을 택합니다. 앞으로는 재사용 기술과 메탄엔진 개발에 투자할 것입니다.” 이 한마디는 유럽 우주 산업계에 반성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재무장관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인해 기술적, 정치적 기득권이 유지되던 아리안 프로그램에 시장 경쟁력이라는 경제 논리가 주입되기 시작했다.
우주발사체 선구자였던 유럽
재사용 외면하다 경쟁력 잃어
로켓 개발 재사용 세계적 대세
한국 차세대 발사체 방향 제시

잘못된 선택이 남긴 상처
한때 유럽은 우주 발사체 시장의 질서를 바꿔놓은 선구자였다. 1979년 첫 발사 이후 아리안 프로그램은 비(非) 미국권 위성 발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었다. 특히 1990~2000년대 아리안 4, 5 체제는 상업위성 발사 수요를 흡수하며 독보적 브랜드를 구축했다. ESA·아리안 컨소시엄이 만든 이 안정적 사다리는 통신 위성의 황금기를 타고 매출과 신뢰도를 함께 끌어올렸다. 아리안 5는 정지궤도 위성의 이중 동시탑재 운용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높은 성공률을 앞세워 보험료를 낮추며 시장의 ‘안정자’로 기능 했었다.
그러나 이후 기술 패러다임은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위성은 소형화·분산 네트워크화로 이동했고, 대형 정지궤도(GEO) 일변도의 발사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에서는 ‘원가 곡선을 꺾는’ 단어 하나가 발사체산업의 궤적을 바꾸게 된다. 바로, ‘재사용’이었다. 유럽이 그 징후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부 전문가들의 기술적 보수성, 회원국 이해관계, 분담금 구조, 산업 참여 할당, 고용 유지의 정치경제가 보수적 결정을 부추겼다. 아리안 6의 기본 철학은 ‘일회용, 공정 합리화, 단계적 원가 절감’이었다. 재사용은 추후 검토할 연구 과제로 밀렸다. 그 사이, 스페이스X는 실험을 반복했고, 실패를 비용으로 삼았다. ‘로켓을 회수하면 싸진다’는 도식은 발표자료가 아닌 발사장과 바지선 위에서 증명되고 있다. 아리안 6는 지난해 1회 시험발사, 올해는 3회 발사에 그쳤다. 그간 개발이 지연되면서 일부 상업 고객들이 이탈한 탓이다. 반면 스페이스X 팰컨9은 지난해 134회, 올해는 최근까지 150회 발사됐다.
이 압축된 괴리는 단순히 ‘많이 쏘았다’가 아니다. 스페이스X는 재사용 횟수 증가, 공급망 수직계열화, 빠른 발사장 재정비, 보험·고객 신뢰 등으로 자가증식 메커니즘을 만들어 나갔다. 매회의 발사는 원가 곡선을 더 낮추는 실험이자, 다음 계약의 이윤 근거이다. 일회용 체제는 매 로켓 발사에 ‘새로 만드는 비용’을 반복 지불한다. 고정비를 나눌 분모가 작을수록 단가는 올라간다. 발사가 지연될수록 보험·스케줄에 연관된 비용은 커지고, 고객은 이탈한다. 악순환이다.
아리안 6는 애초 아리안 5와 비교해 더 싸고 유연함을 약속했다. 그러나 시장이 요구한 것은 재사용과 발사 빈도였다. 가격은 결과였고, 구조(회수·재사용)와 운영(재정비)이 원인이었다. 유럽은 원인을 미루고 결과를 공정 개선으로 달성하려 했다. 그 간극이 지금의 격차인 것이다. 15년 전의 잘못된 결정이 이 상황을 만든 것이다.

재사용이 사업 모델로서 경쟁력 있어
그렇다면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재사용은 이제 기술 옵션이 아니라 사업 모델이다. 가격과 빈도, 스케줄 신뢰도가 위성군 시대의 경제성을 높인다. 둘째, 로켓 프로그램의 목표 함수가 ‘성공적 발사’에서 ‘t당 저궤도 투입비용’으로 전환되고 있다. 셋째, 발사 서비스는 이제 제조산업이 아니라 운영산업이다. 항공사처럼 회전율·정시성·발사체(기체) 관리가 핵심 역량으로 되어 간다. 유럽도 움직이고는 있다. ESA와 프랑스·독일 주도로 메탄계 재사용 엔진, 급랭 추진제 지상처리, 그리고 발사 일정 관리 유연화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2026~2030년 기회의 창은 얇고, 그 사이 경쟁자는 더 싸지고 더 자주 쏜다. 이젠 불루오리진도 재사용에 합류했다.
다음 선택은 철학의 선택이어야 한다. 회수·재사용을 전제로 설계하고, 발사장·보험·공급망까지 고려해 최적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패를 일정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 발사체는 회의실과 연구실이 아니라 제작 현장과 발사장에서 저렴해진다. 영광은 과거형이고, 비용은 현재형이다. 그리고 빈도는 미래형이다. 유럽이 다시 하늘을 시끄럽게 만들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숫자로 말하면 된다. 발사 횟수, 회수율 그리고 t당 단가. 이런 것을 높이고 낮추는 쪽이 곧 시장의 규칙이 된다. 지금 그 규칙을 가장 유창하게 말하는 쪽은 스페이스X다. 유럽이 다시 문장을 바꾸려면, 다음 로켓은 문법부터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법은 대한민국의 로켓 개발에도 적용된다. 전 세계의 로켓 개발이 모두 재사용으로 달려가고 있다. 작은 기업 로켓랩도, 성공적인 기존 로켓 대신, 재사용 로켓으로 궤적을 바꾸고 있다. 연말 시험발사에 성공하면 메탄엔진으로 재사용 로켓 클럽에 가입한다. 이들이 우리의 차세대 발사체 개발의 방향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바로 우리의 전조등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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