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17일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제52기 생도 졸업 및 임관 행사가 열렸다. 성적이 가장 우수한 생도에겐 대통령상, 차석한테는 국무총리상이 각각 수여되는 것이 오랜 관행이다. 그런데 이날 두 수상자에게 전달된 상장을 보면 둘 다 시상자가 ‘고건’으로 돼 있다.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1등에겐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대통령상을, 2등한테는 국무총리 명의로 총리상을 각각 수여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탓에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 총리가 대통령과 총리의 ‘1인 2역’을 소화한 것이다. 훗날 회고록에서 고 총리는 공사 생도 졸업식에 앞서 청와대가 준비한 원래 연설문에서 딱 두 글자만 고친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을 의식해) 몸 낮춘 행보를 선택했다”며 “(청와대와) 불필요한 긴장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엄연히 현직 대통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처신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지 보여준다.
고건 총리가 2017년 펴낸 ‘고건 회고록’(나남)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관한 술회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2004년 3월12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직후 그는 윤영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심의 기간을 가급적 단축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국방부와 행정안전부에 각각 군대, 경찰의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한 데 이어 경제·외교·안보 관계 장관 회의를 소집했다. 훗날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장관이 시차를 들어 “미국 국무부 장관과 아직 통화를 못 했다”고 보고하자 “(미국 시간으로) 새벽이라도 깨워서 연락하라”고 버럭 일갈한 것은 그때 상황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직무 정지로 청와대 경내 관저에 칩거하던 노 대통령과 3차례 전화 통화를 한 대목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 시절 언론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고 고난(苦難) 대행’이란 취지의 기사로 대통령 대신 고군분투하는 고건 총리에게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고 총리의 손자는 “맨날 할아버지가 TV에 나온다”며 “고난 대행 하면서 월급은 얼마나 올랐어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헌재 선고가 다가오며 청와대의 기류가 돌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권한대행인 고 총리에 최대한 협조하던 청와대 참모들이 차츰 그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헌재에서 기각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청와대 참모들은 고 총리를 보좌하던 국무조정실 간부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고 총리는 국무조정실장을 불러 ‘헌재 선고 후 총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현재 미국에서 공부할 대학을 알아보는 중’이란 내용을 언론에 슬쩍 흘려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당시 고건 총리한테 그런 지시를 받고 실행에 옮긴 국무조정실장이 오늘의 한덕수 국무총리다. 국회가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면서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20년 전 국무조정실장으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고 총리를 보좌한 한 총리가 본인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으니 이런 얄궂은 운명이 또 어디에 있겠나 싶다. 한 총리는 “현 상황의 조속한 수습과 안정된 국정 운영이 제 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마지막’이란 단어에 눈길이 쏠린다. 대한민국에서 총리는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 후보군에 포함되지만 자신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윤 대통령의 무모한 행동을 만류하지 못 했다는 자책감도 깔려 있을 것이다. 한 총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마지막 소임’이 꼭 완수되길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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