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4년 임기 동안 한 번도 인도를 방문하지 않았다.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2024년 인도 최대의 국경일인 ‘공화국의 날’(1월26일)에 맞춰 바이든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공화국의 날은 인도가 1950년 1월26일 헌법을 공표하고 공화국이 된 것을 기리는 기념일이다. 해마다 세계 주요국 정상을 주빈(主賓)으로 초대해 성대한 축하연을 여는 관행을 지켜왔다. 애초 백악관은 바이든의 인도 방문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막판에 계획이 틀어졌다. 일각에선 인도의 반(反)정부 인사 인권탄압 의혹 등이 바이든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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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인도는 황급히 바이든의 ‘대타’를 물색했다. 모디가 지목한 인물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마침 인도는 2023년 7월 프랑스가 자랑하는 라팔 전투기 추가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마크롱 입장에선 ‘나 보고 바이든 땜방 노릇이나 하라는 거야’라고 탐탁지 않게 여길 수도 있었겠으나, 그는 이른바 ‘라팔 클럽’의 일원인 인도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친애하는 모디 총리님, 초청에 감사 드립니다”며 “저는 공화국의 날을 맞아 인도 현지에서 귀하를 축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게 해서 갑작스럽게 인도를 찾은 마크롱은 예상보다 훨씬 커다란 환영에 직면했다. 대타가 아니고 제대로 된 주인공 예우를 받으며 축제를 마음껏 즐겼다.
사실 모디도 프랑스 대통령을 후하게 대접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2023년 ‘바스티유 데이’(7월14일)를 맞아 모디를 초청한 바 있다. 1789년 7월14일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이날은 파리 중심가 샹젤레제 거리에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일 모디는 마크롱 부부 바로 옆에 앉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프랑스군은 물론 인도군 일부도 참여한 열병식을 참관했다. 마크롱은 그런 모디를 향해 “국제 평화와 안보에 기여하는 핵심 파트너”라는 찬사를 바쳤다. 2023년 4월 말을 기준으로 인구가 14억2500만명이 넘어 중국을 제치고 세계 제일의 인구 대국이 된 인도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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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미국 수도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신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된 모디가 그에 앞서 프랑스부터 찾았다. 마크롱은 모디를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유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당시 영국군 일원으로 프랑스 전선에서 독일군과 교전하던 도중 전사한 인도 참전용사들의 묘지가 있다. 마크롱은 모디를 향해 “10만명 이상의 인도 장병이 1차대전 기간 프랑스를 위해 싸웠고, 그중 1만명가량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며 “그분들의 희생이 프랑스와 인도 양국을 영원히 결속시킨다”고 강조했다. 미국 방문을 앞둔 모디에게 ‘꼭 미국만이 아니고 프랑스 등 유럽도 인도의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모디·트럼프 회담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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