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과불화화합물 환경 규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다

2025-02-26

과불화화합물(PFAS)은 2020년 개봉한 영화 '다크워터스'에서 '영원한 화학물질'로 언급되며, 프라이팬부터 콘택트렌즈, 아기 매트까지 우리 생활 속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PFAS가 체내에 축적될 경우 대사성 질환, 호르몬 불균형, 산모 및 태아 건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우려 속에서 2023년 2월, 유럽화학물질청(ECHA)은 PFAS 전면 사용 제한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관련 기업과 정부 기관들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PFAS가 거의 모든 산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며, 이번 규제 대상 품목만 해도 최소 1만여종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들은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대체재를 찾고 있으며, 연구자들은 차세대 친환경 대체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PFAS를 대체할 완벽한 기술이 부족하고, 체계적인 전략이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PFAS와 같은 불소화합물은 2019년 일본의 3대 품목 수출 규제 조치로 인해 국내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유럽의 규제는 불소화합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의료, 우주항공, 이차전지 등 주요 산업에서 필수 소재로 활용되며, 소비재 산업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의존하는 핵심 소재임에도 국내 공급망은 여전히 취약한 실정이다.

전통적으로 선진국 정책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보다 주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내 수출 강국으로 성장했으며, 이제는 '왜' 규제가 필요한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능동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과연 우리의 기술력과 연구 역량이 이에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불소화합물은 분자 구조에 따라 물질 특성과 환경 독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PFAS로 분류되지만 인공혈관, 인공 관절 등에 사용되는 테플론(Teflon) 소재는 무조건 대체해야 하는 것인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반면, 체내 축적이 용이하고 수용성이 높은 PFAS의 경우에는 반드시 대체재 개발이 필요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철저한 전략 수립이다. 먼저 PFAS를 산업별·품목별로 세분화해 대체 필요성과 가능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초격차 기술 개발과 신시장 창출을 통해 국가 전략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 글로벌 산업 환경은 디커플링(탈동조화)과 디리스킹(위험 분산)이 가속화되고 있다. 공급망이 재편되며 산업이 블록화되는 과정에서, 불소화합물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100대 품목 및 12대 국가전략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이번 PFAS 환경 규제가 국내 불소화합물 공급망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이번 규제를 계기로 국내 연구개발(R&D) 역량을 집중하여 대체 소재를 개발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이 협력해 체계적인 대응 전략을 마련한다면, 한국이 미래 친환경 소재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변화를 주도하고, 지속 가능한 소재 산업을 구축할 때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손은호 한국화학연구원 계면재료화학공정연구센터장 inseh98@kric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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