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알고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에 LA공항에서 보안검색 요원으로 일하다 큰 위기를 겪고 있었다. 영화 ‘킹스맨’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테런 에저트의 최신작으로 넷플릭스 공개작인 ‘캐리 온’의 얘기이다.
제목인 캐리 온은 일종의 비행 용어로 수하물이라는 뜻이다. 이번 주 이 영화 ‘캐리 온’을 소개하는 이유는 순전히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이고 세상도 어지러운 바, 위기를 이겨 나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그게 꼭 왜 남자여야만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를 그려 나간, 추적 스릴러 한 편쯤이 괜찮지 않아서일까 하는 판단 때문이다. ‘캐리 온’은 연말에 집 안에서 즐길 만한 팝콘 용 액션 영화로 적당한 작품이다.
주인공 이선 코펙(테런 에저트)은 막 임신한 아내 노라(소피아 카슨)와 함께 여느 날처럼 LA 공항으로 새벽 여명 길에 출근을 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고 수십만 명의 여행객, 비행기 이용객들이 몰리는 날이다. 지각하면 안 되지만 오늘도 몇 분 늦었다.
노라도 공항 직원이다. 최근에 매니저급으로 승진했다. 아내는 자신의 남자 이선이 공항 보안 요원 일에 그다지 큰 열의를 보이지 않는 이유가 원래 경찰이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찰 시험에 다시 응모하라고 말한다.
이선은 한번 떨어진 적이 있다. 어쨌든 이선은 아내의 그런 마음에 부응하고자 출근 후 상관에게 오늘만큼은 좀 더 책임 있는 일을 시켜 달라고 간청한다. 그는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검색대 모니터 체크 요원으로 앉게 된다.
공항 검색 요원들은 나름 내부적으로 등급과 체계가 있는 모양으로 사람들의 몸을 직접 점검, 수색하는 일보다 검색대 모니터를 체크하고 수상한 수하물을 잡아 내는 업무가 보다 높은 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이 직책을 맡아야 승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선은 중요 업무 첫날부터 된통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보내온 스마트 이어 폰을 귀에 꽂은 순간 아내인 노라를 저격하겠다며 아내를 죽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특정 남자의 수하물을 열어 보게 하지 말고 검색대를 그냥 통과시키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받게 된다.
수하물의 정체는 ‘노비촉’이라는 이름의 러시아제 신경화학물질이다. 닿기만 해도 치사율 백 퍼센트의 가장 악질적인 생화학 가스이다. 이선에게 ‘오더’를 보내는 누군가는 공항 안 여행객(제이슨 베이트먼)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범인은 공항 밖 누군가, 혹은 어떤 조직으로부터 백업을 받고 있고 그들은 모든 CCTV를 해킹해서 이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중이다. 이 수하물이 비행기에 탑재되는 순간 뉴욕행(나중에는 그게 워싱턴 DC행이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비행기 승객 250명은 바로 죽은 목숨이 된다.
이 범죄조직이 노리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선은 살인 가스 수하물도 막고 자신의 아내의 목숨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적 서스펜스가 시작된다.
이번 영화 ‘캐리 온’을 만든 자우메 코예트세라(자움 콜렛 세라) 감독은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으로 ‘논스톱’과 ‘언더 워터’ 등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액션, 좁은 공간과 공간 사이를 오가는 추격전을 그리는데 능한 연출력을 보이는 감독이다.
‘논스톱’은 리암 니슨 주연의 영화로 비행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폭탄 테러범과의 색출과 사투의 얘기를 그린다. ‘언더 워터’는 작은 암초에 고립된 채 식인 상어와 싸우는 한 의대생 여성의 이야기이다.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나왔던 영화다. 이번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항은 코예트세라가 그려 왔던 폐쇄 공간 중 가장 큰 것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그의 장기가 작은 공간에서의 추격전인 만큼 이번 영화에서는 수하물들이 옮겨지는 공항 뒤편 수하물 컨베이어벨트에서의 액션 장면에서 그 같은 자신의 특기를 잘 살려 내고 있다.
감각적인 액션 연출은 그 밖에도 이런저런 장면에서 돋보인다.
LA 경찰인 엘레나(다니엘레 데드 와일러)가 앨콧이라는 이름의 국토 안보부 수사관이라는 남자와 11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겠다며 격렬하게 치고받는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살짝 혀를 내두르게 만들 만큼 잘 찍어 냈다.
앞뒤로 차가 받히고, 옆에서 들이받고, 하는 장면을 리얼 백 퍼센트의 느낌으로 찍어 냈다. 이 영화의 백미이다.
영화 ‘케리 온’의 핵심 내용은 극중 그레이스 터너라는 하원 의원이 발의한 민주주의 방어법(Defence for Threatened Democracies ACT), 곧 DTD 법안이다. 반국가 세력의 위협을 막기 위해 각종 군사시설, 무기, 방어 체계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인데 막대한 예산 문제로 인해 의회에서 통과가 저지돼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산복합체, 무기 판매상들은 이 법안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영화는 이들이 법안 통과를 관철시키기 위해 테러 행위를 유발, 국가 위기 상황을 연출하려는 목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런데 정작 터너 의원이 자신의 갓난 아이와 함께 해당 비행기에 탑승한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진짜 범인들은 누구일까. 혹시 터너의 반대 세력일까.
영화는 미국에서조차 반국가 세력이 진짜 존재하는가. 그건 혹시 내부의 적이거나 누군가의 과도한 망상으로 만들어진 허구의 존재가 아닌가, 특정 집단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조작해 낸 것은 아닌가의 문제를 안고 있음을 고백한다..
할리우드의 다소 사소한, 엔터테인먼트용 액션 스릴러 영화에서조차 지금 한국의 상황이 떠올려진다. 주인공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내는지, 할리우드 영화는 이 ‘역공작의 역공작’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반면교사를 통해 가르쳐 준다.
지금 우리의 위기와 그 해법도 어쩌면 이 영화 ‘캐리 온’에 담겨 있을 수 있다. 과연 누가 나라와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자이고 세력인가. 이번 영화에서 답을 구해 보시기를 바란다.
주인공 이선을 앞세워 비행기에 살인 가스 수하물을 실으려 했던 범인 역으로 제이슨 베이트먼이 나오는 것이 이색적이다. 제이슨 베이트먼은 인기 미드 ‘오자크’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주로 코미디 영화에서 ‘착하고 댄디한 얼굴의 웃긴 남자’ 역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
윌 스미스 주연의 ‘핸 콕’에서 슈퍼우먼 샤를리즈 테론의 어진 남편 역으로 나왔었다. 이번 영화 ‘캐리 온’에서는 평소 이미지를 180도 바꿔서 나오는 셈이다. 주연인 테런 에저트만큼 비중이 높은 배우이다.
영화 ‘캐리 온’은 사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2003년 영화 ‘폰 부스’의 설정과 많은 부분 비슷한 감이 있다. ‘폰 부스’도 공중전화박스에 갇혀 누군가가 전화로 내리는 오더를 실행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전화박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캐리 온’의 주인공 역시 처음에는 검색 모니터와 검색대에서 발이 묶인다. 하늘 아래 새로운 영화는 없다. 과거 영화가 현재 영화를 가르쳐 준다. 과거가 현재를 살린다. 그건 영화 쪽에서도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