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발행일정 등 주요사항 미기재 '오리무중'
일각선 제이오 인수 발빼기 '약속대련' 시각도
금감원 "공시 형식적 완결성 미비, 철회 마땅"
[인사이트녹경 = 조영갑기자] 이수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이수페타시스의 '5500억원' 유상증자를 둘러 싸고 시장의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2차전지 도전재 제조사 '제이오'를 인수하겠다는 게 유증의 주요 골자인데, M&A(인수합병) 시너지는 물론 유증의 형식, 유효성 등을 두고 의구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업계에선 사실상 유증을 철회하고, 제이오 M&A에서 발을 빼기 위한 '출구전략'이란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금융당국도 공시의 형식상 요건이 미완결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15일 주주배정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와 관련 세 번째 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유증 세부 일정을 공란으로 비우면서 사실상 유증 일정을 전면 백지화했다. 지난해 11월 8일 최초 유증 공시를 낸 이수페타시스는 이후 금융감독원의 정정 지적에 따라 11월 14일, 12월 11일, 올해 1월 15일까지 세차례 정정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수페타시스는 두 번째 정정신고서를 통해 유상증자 청약 일정을 2월, 납입일을 3월 초로 기재했었다. 유증 신주 상장예정일은 3월 19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정정신고서에선 신주발행가액 확정예정일, 신주배정기준일, 청약예정일, 신주 상장 예정일 등 유증의 주요 일정 사항을 모두 공란으로 비워뒀다. 이 기묘한 유증을 두고, 시장에서는 사실상 유상증자를 철회하기 위한 수순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초 이수페타시스는 유증을 통해 신주 2010만주를 발행, 총 55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발행주식의 31.79%에 해당하는 대규모 유증이다. 2500억원은 CAPEX(자본지출) 투자용 시설자금으로 배정하고, 3000억원은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으로 할애했다.
논란은 타법인 출자 계획에서 비롯됐다. 유증 자금을 조달해 탄소나노튜브 기술을 보유한 제이오의 경영권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복안이었는데, 해당 기술이 이수페타시스가 전개하고 있는 사업과 시너지 포인트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불거졌다. 이수페타시스는 국내 주요 전자기기 PCB(인쇄회로기판) 제조사다. 특히 AI 디바이스 시장이 개화하면서 전기전달 속도가 우수한 다중적층 MLB 기술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수그룹은 이미 케미컬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 '이수스페셜티케미컬'도 보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MLB 기판 사업이 시장의 기대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유증을 통해 시너지가 불분명한 타법인을 인수하겠다는 결정에 시장의 투심이 싸늘하게 식었다"면서 "시기 등 주요 사항을 기재하지 않은 정정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유증을 철회하기 위한 수순으로 봐야한다"고 전했다. 유증 추진 탓에 지난해 11월 중순 이수페타시스의 주가는 신주 발행예정가(2만7350원)를 한참 하회하는 2만1000원 선까지 떨어졌다. 주주들은 회사의 유증 철회를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정정공시를 일종의 '약속대련'으로 보기도 한다. 금감원의 정정명령을 재차 받아 유증계획을 전면 철회하는 수순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어 시장의 비판을 받고 있는 제이오 인수 계획도 백지화하는 그림이다. 차입의 카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유증에 실패하면 사실상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힘든 구조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이수페타시스는 현금성자산 683억원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미 제이오 측에 지급한 계약금(158억원)과 인수를 포기할 경우 물어야 할 위약금과 이행보증금 등 이다. 인수자금의 규모가 3000억원 가량이었던 만큼 위약금과 이행보증금 액수는 계약금 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김세민 이수 전략본부장이 진두지휘한 제이오 인수 계획을 부친인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 반대하면서 사실상 제이오 인수 계획은 백지화 수순으로 가고 있는 걸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기지급된 계약금은 손상처리하고라도 인수 포기 방향으로 가지만, 위약금 관련 손실은 막겠다는 게 이수그룹의 입장이라는 얘기다. M&A 실패와 관련한 손실의 규모가 커지면 향후 경영진 배임 이슈도 불거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M&A 과정에서 계약과 관련한 위약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실사 과정에서 피인수 기업의 현저한 계약 위반 사항을 밝혀내거나 불가피한 사유에 따른 주주간 양해 등인데, 이수페타시스는 금감원의 정정공시를 명령과 유증 철회를 통해 (계약 미이행의) 불가피한 사유를 창출하려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수페타시스 측이 제이오 재실사를 단행한 것도 이 시각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이수그룹 관계자는 "공시 사항 외에 공개할 수 있는 사항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공시와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은) 실무적인 부분이라 공시의 완결성, 적합성이 위반사항이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공시와 관련된 주요한 사항인 일정이 미기재 돼 있기 때문에 이대로는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완결성이 완비돼야 그 사항을 토대로 심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수페타시스의 최근 정정 공시는 금감원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다는 점을 명확히 밝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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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페타시스 #유상증자 #제이오
조영갑 인사이트녹경 기자 insight@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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