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을 강의하는 구본명 교수를 연세대학에 초청했을 때였다. 내가 ‘성경전서’를 선물했다. 구약의 ‘창세기’를 읽은 구 교수의 얘기다. “나는 불경이나 논어를 연상하면서 성스러운 신앙의 교훈을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종교 경전의 내용보다는 유대인 선조의 씨족역사(氏族歷史)였다. 그 내용도 성스러운 가르침보다 세상에 내놓기 부끄러운 기록들도 있었다”라는 것이다. 나도 공감하면서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 모두가 역사적 기록입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한다면 기독교는 자연 신앙이나 철학이 아닌 역사 신앙입니다. 창세기를 읽으셨으면 신약에서는 4 복음 중 하나와 사도행전을 읽으면 됩니다. 역사적 기록들이니까 어떤 면에서는 재미도 있고요”라고 설명했다.
윤리·도덕·철학과 신앙은 달라
기독교, 신과 인격적 관계로 출발
역사적 사실 배제하면 존재 않아
평화와 인간애 완성이 신의 섭리
신은 철학적 사상의 대상이 아니다
프랑스의 파스칼은 과학자이면서 기독교사상의 대표자이다. 그의 신앙고백 제 1조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철학자의 하느님은 아니다’였다. ‘신학자의 하느님도 아니다’라고 추가해도 될 내용이다. 그 뜻은 신은 역사적인 하느님이지 철학적 사상의 대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종교학자 머치아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교수는, 프랑스에서 교수로 있다가 미국 시카고 대학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많은 종교학 제자가 미국으로 따라왔을 정도다. 나도 그의 강의실에 동참하는 기회를 얻었다. 엘리아데 교수는 자연을 근원으로 삼는 모든 종교를 종교로 본다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독교는 역사 신앙이기 때문이다.
신앙적 체험의 중요성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유교는 인간 간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에 속한다. 그 위에 종교적 성격을 가미해 하늘(天)의 사상을 받아들일 때 종교적 성격의 유교가 되었다. 불교의 원천은 인도의 우파니샤드 철학이다. 우주의 실체인 브라만(Brahman)과 인간의 실체인 아트만(Atman)이 하나가 될 때 법(法)에 이르게 된다.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신앙이다. 종교가 인간의 영역에 속할 때는 윤리와 도덕에 머무나,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될 때는 철학적 사유로서의 신앙이 된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신(神)과 인격적 관계로 출발했다. 그 결과가 역사 신앙이 된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배제한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두 가지 성격과 내용을 갖는다. 개인의 체험과 역사적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신앙적 체험이 사회적 통합체가 되어 기독교 신앙의 정체(正體)를 만든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면 아무리 설명해도 부모와의 사랑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설명이나 이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 살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기독교인과 사회인의 차이다. 신앙이 무엇인가 묻지 않는다. 내가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14세 이후 신앙 속에서 산 삶
내 경우도 그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14살 때였다.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마다, 내 앞에는 죽음이라는 절망의 강이 놓여 있었다. 부모나 의사도 내가 20세가 될 때까지 살지는 못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몇 차례 죽음이 어떤 것인지 체험했다. 그래도 나는 살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 드리는 마음을 갖기 시작했다. 기도는 간단했다. ‘하느님께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게 해 주시면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일을 해 드리겠습니다’라는 기도였다. 철없는 기도였기 때문에 순진했고, 순진했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1학년 크리스마스 때였다. 윤인구·김창준 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내가 믿는 하느님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달았다.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그때부터 한평생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졌다.
중학교 4학년 때였다. 우연히 주어진 일이 계기가 되어 평양 북쪽의 덕지리(德池里)라는 시골교회에서 어린 학생들과 동네 어른들을 위한 신앙부흥회를 가졌다. 다음 해 여름 방학 때는 마우리(한국명 모의리,1880~1971년) 선교사의 부탁으로 숭실전문학교 농장이 있는 시골교회에서 신앙집회를 이끌어 주었다. 그 일이 시발이 되어 지금까지 개신교와 천주교 안과 밖에서 신앙적인 설교와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은 물론 신학대학과 미국, 캐나다의 교회 중심의 신앙집회도 맡아주면서 지냈다. 나는 정식으로 신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성직을 차지할 자격도 갖추지 못한 평신도의 한 사람일 뿐이다. 철학을 전공한 교수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27세에 38선을 넘어왔을 때 단 한 번 직장을 찾았을 뿐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 지금까지 언제나 일과 직장이 주어지곤 했다. 대학을 정년 퇴임했을 때도 그랬고 90을 넘기면서는 나를 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으나 계속 주어지는 일 때문에 쉴 수가 없었다.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건강 때문에 주어진 주님의 일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사람은 언제까지 사는 것이 좋은가. 일할 수 있고 사랑을 나누어 가질 때까지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낸다.
이것은 나의 여러 신앙적 체험의 하나이다. 나보다 놀라운 체험과 업적을 남긴 사람은 수없이 많다. 미국에 갔을 때는 조지 워싱턴 (G.Washington), 벤저민 프랭클린(B. Franklin.), 에이브러햄 링컨(A. Lincoln) 같은 역사적 인물을 미국 역사와 더불어 보게 되며, 서양과 세계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신앙적 지도자와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기독교 정신을 체험한 사람들의 역사적 현실이다. 그런 신앙적 체험과 역사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것이 신의 섭리이며 역사의 희망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기독교의 역사적 신앙과 사명이다. 평화와 인간애의 정신을 완성하려는 역사적 희망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