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보다 실리’ 화이트칼라 MZ노조
◆‘노조’ 힘 떨어진 이유는=예전 같지 않은 노동조합의 위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노동조합 조직률은 13%로 2021년(14.2%)보다 떨어졌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8036명 줄어 107만 명대에 그친 반면, 독립노조는 50만명(49만1672명)에 육박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노조 내부에서도 양대 노총의 운영 방식이 현장과 멀어졌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2023년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한 포스코지회는 “조합비에 비해 태풍 힌남노 당시 현장 지원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삼성그룹 초기업 노조도 “극단적인 투쟁 방식 때문에 조합원들이 피로감을 호소한다”며 양대 노총 가입을 반대하며 출범했다.
‘기득권화’ 비판도 거세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현대차는 1만8000명을 정리해고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쇠사슬 투쟁과 84m 대형 굴뚝 고공 농성, 36일 파업 끝에 해고 규모를 277명으로 줄였지만, 해고당한 절반 이상(144명)이 사내식당 여성 노동자였던 점은 ‘귀족 노조’ 이미지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부문의 고령자(55~59세)는 2004년 2만500명에서 2024년 21만6000명으로 777%나 증가한 반면, 청년(23~27세)은 2004년 12만3000명에서 2024년 12만1000여 명으로 1.8% 감소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태일로 상징되던 ‘정의의 서사’는 희미해지고, 노조가 ‘밥그릇 지키기’ 프레임에 갇혔다는 비판이 이는 배경이다.

◆‘내 삶’ 지키는 노조가 뜬다=새로운 흐름은 대기업에서 등장한 이른바 ‘MZ 노조’다. 기존 생산직 중심 노조가 사무직의 처우를 제대로 대변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흐름의 집결지가 2023년 출범한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다. 흔히 ‘MZ 노조’라고 불리지만, 실상을 따져보면 양대 노총 바깥에서 목소리를 내 온 사무직 노조들의 느슨한 연대 조직에 가깝다. 기존 노조가 정치적 구호를 외쳤다면 이들은 회사 생활 중의 하나라도 바꿔 보자는 ‘현실주의’가 바탕이다.
이런 변화는 국내 산업의 구조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이후 대기업 노조는 주로 현장·생산직 중심으로 조직돼 왔다. 사무직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고 관리 역할인 경우가 많아 노조의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조업 성장이 둔화하고 정보통신(IT) 기업들이 급부상하면서 사무직에 대한 성과 압박은 높아진 반면, 보상 등 처우 개선 속도는 정체됐다.
불만의 도화선은 역시 임금 차이다. 일반적으로 생산직은 호봉제를, 사무직은 성과연봉제를 적용받는다. 여기에 임금·단체협상 성과는 노조의 힘이 강한 생산직에 우선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생산직 임금은 일률적으로 인상되는 반면, 사무직은 저성과자로 분류될 경우 연봉이 3% 삭감되거나(LS일렉트릭·2022년), 기본급 동결 대신 지급된 격려금(100만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금호타이어·2021년)가 반복됐다. 차별적 보상 구조는 사무직 근로자들 사이에서 ‘공정하지 않다’라는 분노를 키우는 계기가 됐다.
금호타이어 사무노조는 법원에 이 같은 문제를 소송했고 2022년 중앙노동위원회는 대기업 사무직 가운데 처음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인정했다. 임금 체계와 고용 형태, 업무 환경이 생산직과 크게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교섭단위 분리로 사무노조에도 힘이 실렸고, 올해는 사무직도 생산직과 동일하게 퇴직금 중간정산 제도를 적용받게 됐다. 2021년 출범 당시 180명 수준이던 조합원 수도 현재 650명으로 늘었다. 이는 사무직 전체 가입 대상 인원(약 1100명)의 절반이 넘는다.

◆분열이 곧 목소리=하지만 ‘젊다’고 해서 연대가 단단한 것도,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것도 아니다. 다른 생각이면 갈라지고, 지도부를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조직의 대의보다 개인의 판단이 우선되는 흐름이 뚜렷하다.
대표적 사례가 MZ 노조로 각광을 받았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의 분열이다. 이들은 지난 4월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에게 “임금 삭감없는 주 4~4.5일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보냈다가 내홍에 빠졌다. 일부 소속 노조가 “조합원 동의 없이 민감한 시기에 단체 이름을 올렸다”고 반발하면서다. 겉으로는 ‘사전 동의 여부’가 문제가 됐지만 속내는 더 복잡하다. 우선 주 4~4.5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노조도 많았다. 이미 정년 연장,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주 69시간제 등 사안에서도 입장이 갈려왔다. 결국 일부 노조가 협의회를 떠나면서 연대는 균열을 맞았다.
삼성전자 노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물밑에서 초기업 노조와 통합 논의를 진행하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밀실 합의’ ‘이면 거래’라는 비판이 불거지며 양측 위원장이 동시 사퇴했다. 조직력은 약해졌지만 의사결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오히려 강해진 것이다.
많은 MZ 노조들이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제도적인 벽에 부딪힌 것도 또 다른 한계다. 앞서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 설립을 주도해 화제가 됐던 이건우 위원장은 노조 설립 1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기존 강성 노조와의 차별화, 생산직 위주 교섭 탈피를 내세워 커뮤니티 가입 직원이 5000명에 달하는 등 세를 불렸지만, 유일한 교섭단체인 기존 노조가 사측과 소통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활동의 구심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질문은 ‘작은 실리’=김한엽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위원장은 “정치적 피로감 때문에 양대 노총 밖으로 나왔지만 막상 정치력 없이 협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대의와 생활권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이들이 택한 해법은 ‘크게 싸우는 대신, 작게 바꾸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사무직 중심의 제3 노조인 ‘올바른노조’가 추진한 출산장려금 제도가 상징적 사례다. 지난해 시행된 이 제도는 올해 5월까지 조합원 76명에게 총 6170만원을 지급했다. 월평균 686만원가량이 ‘실제 삶’에 투입된 셈이다. LG전자 사무직노조 역시 결혼정보회사와 제휴해 조합원을 위한 미팅 파티를 진행하기도 했다. ‘결혼·출산은 사적 선택’이라며 외면했던 영역을 이제 노동조합이 함께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노동자의 삶이 지속하지 않으면 노동운동도 이어갈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울타리 밖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일은 모두의 숙제로 남아 있다. “정규직 권익 대변 위주의 실리주의 활동은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주범”(『노동자연대』)이라고 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청년·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등 기존 노조가 포착하지 못한 사각지대를 대변할 수 있는지가 향후 노동운동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며 “조합원이 체감하고 시민이 납득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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