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 책임보험의 보험료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현행 책임보험 제도의 근본적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보험료 납부 주체가 정비 업체라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안내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되 CCTV 기록 보존 의무화 등 정비 업체의 성능·상태 점검 형태를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정치권도 본격적인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18일 “중고차 성능·상태 책임보험과 관련해 소비자 비용 전가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현재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능·상태 점검 책임보험은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해 설계된 제도지만 지금은 소비자가 보험료를 내고 사업자가 보험금을 받는 구조로 변질됐다”면서 “국토부는 업계 반발을 이유로 소비자 전가를 용인했고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도 보험 상품의 불합리한 구조와 불공정행위를 방치한 채 사실상 감독 기능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중고차 성능·상태 책임보험의 보험료 부담 구조다. 앞서 국토부는 2019년 성능·상태 책임보험 제도가 도입됐을 때 “책임보험료가 발생해 중고차 매매가에 반영될 경우 소비자에게 받을 수 있다”고 업계에 안내한 바 있다. 이를 근거로 중고차 매매 업체와 정비 업체들은 책임보험료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이를 토대로 정비 업체가 피보험자인 동시에 성능·상태 점검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을 받는 주체인데도 실제 비용은 소비자가 내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한 대형 중고차 매매 업체에서는 자사가 제공하는 보증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고객에게는 책임보험료를 내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이유로 소비자에게 책임보험료는 원래 점검 업체가 부담한다는 점을 명확히 안내하도록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유주선 강남대 법행정세무학부 교수는 “보험계약자는 스스로 보험료를 내고 보험금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계약자(정비 업체)가 보험료를 내는 것을 소비자에게 명시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능·상태 점검 실태를 소비자가 제대로 모니터링하기 어려운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도로교통공단이 시행하는 정기 자동차 검사의 경우 검사 장면을 CCTV로 촬영해 2년간 보존한다. 하지만 성능·상태 점검에는 그러한 절차가 없다. 이처럼 점검 과정을 검증할 장치가 없다 보니 손해·사고율 관리가 어렵고 보험료 부담 역시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의원이 보험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성능·상태 책임보험의 사고율은 2019년 6월~2020년 2월 1.48%에서 지난해 3월~올해 2월 4.31%로 3배 가까이 뛰었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 기록부와 실제 성능 간 차이가 계속 발생한다는 것”이라며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 장면을 촬영해 일정 기간 보존하는 식으로 기록을 남겨 소비자들이 실제 점검 절차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기 자동차 검사 수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자동차 성능·상태 점검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국토부뿐 아니라 금융 당국과 공정위 등 관계부처가 함께 제도 개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직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소관 부처인 국토부는 보험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금융 당국에서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보험 통계나 보험금 지급 및 손해율 통계 등을 보험개발원과 금감원이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도 “보험업은 기본적으로 금융위의 소관 업무”라며 “금융위와 국토부 간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의원은 “공정위는 소비자의 동의 없이 비용을 떠넘긴 행위에 대한 제재 기준을 마련하고 국토부는 점검 품질을 관리·감독하는 체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