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SG채권 시장, 카드업계 주도 8조 원 돌파
현대카드·커머셜, 현대차 구매 위한 녹색채권 발행···"실질적 산업 구조 전환 효과는 미미"
환경부, 'K-택소노미 개정'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 녹색채권 발행 유도
[녹색경제신문 = 나아영 기자] 2024년 글로벌 ESG채권 시장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가운데, 국내 시장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국내 ESG채권 발행이 금융권, 특히 카드사에 편중되면서 실질적인 산업 구조 전환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7일 한국거래소 사회책임투자채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ESG채권 발행액은 8조 255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 성장했다. 이 중 한국형 녹색채권이 5조 4857억 원으로, 전체 발행 건수의 76%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했다.
이 중 카드 업계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2024년 카드사의 ESG채권 발행은 2조 68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6.4% 급증했다. 현대카드는 7100억 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하며 국내 최대 발행사로 올라섰는데, 이는 2023년 2500억 원에서 3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금융회사의 녹색채권 발행은 자사의 ESG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친환경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중개 기능을 담당하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국내 금융회사의 녹색채권은 자금 사용처가 대출이나 결제 지원 등 단순 중개에 편중돼 있어, 실질적인 산업 구조 전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노출했다.
현대카드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현대카드가 조달한 7100억 원의 녹색채권 자금은 전량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기아가 생산한 친환경 자동차 모델 판매에 대한 결제 비용으로 사용됐다. 더불어 2024년에는 현대커머셜도 3700억 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해 현대차 구매 지원에 활용했다. 이는 친환경 차량 구매를 촉진하는 효과는 있지만, 새로운 친환경 기술 개발이나 생산 시설 전환 등 근본적인 산업 구조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평가다.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의 이러한 행보는 녹색채권이 실질적인 환경 개선보다는 그룹 내 자금 순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는 "현재의 녹색채권은 자금 순환 통로 역할에 그치고 있어, 실물경제의 친환경 전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금융회사들이 녹색채권 시장 형성에는 기여했으나, 실질적인 산업 구조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통해 실물경제 주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환경부는 녹색금융 저변 확대를 위해 지난달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개정했다. 다회용기 활용, 토양오염·실내공기질 관리 등 10개 경제활동을 신설하고, 생태계 보호 대상도 확대했다. 이를 통해 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녹색채권 발행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2025년 금융정책 방향'에서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는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개정, 녹색분류체계 적용 확대 등이 포함됐다. 또한 금융감독원은 녹색채권 사후보고 의무화 등 관리·감독 강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나아영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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