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구진, 플로리다주 앞바다 관찰
연안 떠밀려온 돌고래 뇌 속 분석
‘남세균’에서 비롯된 신경 독소 발견
알츠하이머병 유발해 인지 능력 상실
수온 상승이 원인…미래가 더 불안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돌고래’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야말로 수많은 콘텐츠를 찾을 수 있다. 돌고래가 바닷속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며 무리와 소통하는가 하면, 사람과 얼굴을 마주한 채 주변을 맴도는 모습 등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그만큼 돌고래가 동료는 물론 인간과도 교감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동물이라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런 똑똑한 돌고래에게 치매를 유발하는 ‘알츠하이머병’이 발생하고 있고, 그 주된 원인이 인간이 만든 기후변화에 있다는 충격적인 분석이 나왔다. 기후변화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해양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바닷속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미국 허브스 시월드 연구소와 밀러의대 소속 과학자들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플로리다주 해안으로 떠밀려와 죽은 돌고래 20마리 몸을 분석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에 최근 발표했다.
돌고래들을 발견한 장소는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 해안 중에서도 ‘인디언 리버 라군(IRL)’이라는 곳이다. IRL은 한국의 경포호와 비슷한 ‘석호’다. 수심이 얕고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있다. 연구진 분석 대상이 된 돌고래는 생물학계에서 ‘큰돌고래’로 부르는 종류다.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 바다에서 산다.
연구진은 IRL에서 찾은 돌고래들 뇌에 특이한 화학 물질이 있는지 분석했다. 하고많은 몸속 기관 가운데 뇌를 들여다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와 함께 돌고래는 고도로 발달한 뇌를 가진 대표적인 생물이다. 물속을 헤엄쳐야 할 돌고래가 해안으로 돌진한 행동은 결국 뇌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뇌는 차량으로 치면 내비게이션 장비다. 업데이트하지 않은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하면 가까운 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가는 일이 잦아진다. 아예 길을 잃기도 한다. 연구진은 돌고래가 해안으로 올라오게 된 것이 온전치 않게 작동한 뇌 때문이라고 추론한 것이다.
연구진 예상은 적중했다. 분석 대상이 된 모든 돌고래 뇌에서 신경 독소인 ‘2,4-디아미노부티르산(DAB)’이 검출됐다. 2,4-DAB는 일정 용량 이상 몸에 흡수되면 경련을 유발한다. 뇌의 전기신호 전달 장치 ‘뉴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궁극적으로는 뇌를 망가뜨려 인지 능력을 떨어뜨린다.
2,4-DAB는 어디서 왔을까. 추가 분석을 한 연구진은 바다에 사는 시아노박테리아, 즉 남세균을 지목했다. 남세균은 식물처럼 광합성을 한다. 산소를 대기에 방출한 지구 최초의 생물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남세균 일부 종은 독성 물질을 생성하는 것이 문제다. 2,4-DAB가 그런 독성 물질 가운데 하나다. 연구진은 “돌고래가 길을 잃고 해안으로 밀려온 것은 독성에 만성 노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돌고래를 이렇게 만든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고 봤다.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지난 10년간 플로리다주 기온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이 현상은 해수 온도 상승을 부채질했다”고 설명했다.
2,4-DAB를 만드는 남세균은 수온이 25~30도인 따뜻한 바다에서 활발히 번식하는데, 기후변화로 데워진 대기가 바다 수온을 높이는 난로가 됐다는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가 극심하지 않았다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돌고래도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기후과학계는 인류가 기후변화를 방치한다면 금세기 말 기온은 19세기 말보다 최고 4.4도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바다 수온도 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알츠하이머병에 고통받는 돌고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돌고래가 IRL에서는 물론 전 세계 바다에서 늘어날 공산이 크다.
기후변화가 해양 서식 환경을 해치는 것을 넘어 아예 돌고래 뇌를 직접 공격하는 상황에 대해 연구진은 “남세균에 대한 노출이 점점 더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있다”면서 “이와 연관해 2,4-DAB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