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비관론에 빠지는 대신...데이터가 알려주는 현황과 성과[BOOK]

2025-10-17

나는 이 빌어먹을 지구를 살려보기로 했다

해나 리치 지음

연아람 옮김

부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악당 타노스는 우주의 시스템과 자원이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든 생명의 절반을 ‘공정’하게 무작위로 없앴다. 그 영화가 한창 상영될 무렵에는 타노스가 내린 판단의 전제가 맞는다면, 그의 선택을 마냥 비난하지는 못하겠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몇 년이 지난 요즘, 매년 전 지구 평균기온이 최고점을 갱신하면서 기후우울이 거대한 흐름으로 등장했다. 각자 애써 노력하는 정도로 과연 지구 전체 상황이 호전될 수 있을까? 지구가 견딜 수 없으니 타노스 같은 극단적 수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짓은 해서도 안 되고, 할 방법도 없다. 그러니 망할 일만 남았다는 체념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기후우울로 속앓이가 심하다. 널리 보도되는 논문들을 봐도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는 전망을 극복하기 힘들다.

『나는 이 빌어먹을 지구를 살려보기로 했다』(원제 Not the End of the World)는 기후우울에 빠져 있기만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책의 메시지는 세 가지. 첫째, 현재 인류는 심각한 환경 위기에 직면해 있다. 둘째, 위기의 일면을 과장하는 ‘상식’들이 너무 많아 환경 위기 극복에 장애가 될 정도이다. 셋째, 광범위하게 데이터를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누적되고 있다. 기후위기 부정론은 거론할 가치도 없고, 파국을 막는답시고 삶의 질을 과격하게 희생하지 않아도 되게 할 수단과 기회가 눈앞에 있다는 관점도 배어 나온다. 여기까지는 기존 기후위기 서적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차별점은 전 지구적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일반인이나 정책결정자들이 알아볼 수 있게 가공한 형태로 쏟아내는 점. 대기오염, 기후변화, 삼림파괴, 식량문제, 생물다양성 훼손,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어류 남획 등 이슈들의 현황과 진단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시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토록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지은이는 국제적인 데이터 기반의 온라인 출판물로 최근 10여 년 동안 명성이 높아진 '아워 월드 인 데이터' 부편집인이다. 데이터들을 하나의 관점에서 엮어 보여주는 점에서, 개별 논점에 대한 찬반을 떠나 찬찬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데이터에 근거했더라도, 논쟁적 지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육류 생산 방식을 비교하는 대목은 동물권 운동가들을 자극할 수 있는 서술에서 더 나가지 않았다. 풍력, 태양광, 핵 발전이 단위 전력생산량당 사망자 수 면에서 모두 화력보다 압도적으로 낫고 서로 비슷하다고 얼버무리는 대목은 과거 한때 풍력과 태양광이 핵보다 몇 배 더 많은 사망자를 낳는다고 게시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앞으로 기온상승이 1.5도를 넘게 된다는 점도, 넘더라도 바로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돌려 말한다.

데이터들이 정책과 사회체제의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데도, 그 문제들의 반의반 걸음 앞에서 멈추는 점도 아쉽다. 전기차의 효과는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좋다고 하면서, 지역별 전력생산 문제는 회피한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와 미세 플라스틱 문제의 가장 큰 근원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처리하는 행정체계가 미비하기 때문이라고만 이야기하는데, '아워 월드 인 데이터'는 동남아의 몇몇 강들이 더 문제라고 거론한 바 있다. 개인의 실천에 크게 의존하는 각종 재활용이 각자가 애쓰는 정도에 비해 기여하는 바가 크지 않다고 적시하면서도 정책적 실천을 압박해야 한다는 말은 아낀다.

그럼에도, 느낌만큼 암울하지는 않다는 데이터들은 반갑다. '아워 월드 인 데이터'를 체크해보니 대한민국도 GDP 1달러당 에너지 소비나 이산화탄소 배출이 꽤 줄었다. 여전히 이상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성과가 나오고는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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