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호랑이가 사냥에 나섰다가 여우 한 마리를 포획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우는 호랑이에게 자신을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천제(天帝)께서 자신을 백수(百獸)의 대장으로 삼았으며, 만약 자신을 잡아먹으면 하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혹시 거짓말로 의심되거든, 앞장서 걸어볼 테니 자신의 뒤를 따라오며 관찰하라고 여우가 말합니다.”

‘전국책(戰國策)’에서, 책사 강을(江乙)이 초나라 왕에게 재상 소해휼의 위세와 명성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는 에피소드의 일부다. 마치 이솝처럼 문학적 재능이 풍부했던 유향(劉向. 기원전 77~기원전 6)은 이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화체를 적극 활용했다.
이번 사자성어는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 호, 거짓 가, 범 호, 위엄 위)다. 앞 두 글자 ‘호가’는 ‘여우가 거짓으로 속이다’란 뜻이다. ‘호위’는 ‘호랑이의 위엄’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여우가 범의 무서움에 기대어, 동물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꾸미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호가호위’는 전한(前漢) 말기에 유향이 저술한 ‘전국책’에서 유래했다. ‘전국책’은 전쟁이 끊이지 않던 중국 전국(戰國)시대 책사들의 유세(遊說) 클라이맥스(climax) 장면 모음집으로 볼 수 있다. 죽간, 서적 등 궁정 기록물의 보관소 수장이던 유향은 과거 책사들이 ‘세 치 혀’로 상대를 제압하던 그 결정적 순간들을 모아 한 권에 담았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순망치한(脣亡齒寒) 등 익숙한 사자성어들이 ‘전국책’에 가득하다. 이 가운데 ‘호가호위’ 관련 페이지는 유향의 생애와 관련이 깊어 더 눈길을 끈다.
관료 겸 저술가 유향의 본명은 갱생(更生)이다.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의 이복 동생 집안에서 태어난 황족(皇族)이었다. 성장하면서 독서에 열중했고 품행도 단정했기에 20대 초반부터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성격은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아 관료 생활 초기에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연금술에 심취했는데, 관료가 된 이후 첫 번째 ‘호가호위’ 관련 위기의 원인이 되고 만다. 하루는 무슨 자신감이 솟구쳤는지 전설에나 등장하는 연금술사를 ‘호가호위’하며, 화학적으로 금을 제조할 수 있다고 정식으로 황제에게 보고했다. 당연히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친형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감형(減刑)을 받고, 한직이지만 관료로 복직할 수 있었다.
관료 생활에서 두 번째 ‘호가호위’ 관련 위기는 그가 환관과 외척의 전횡을 성토하는 상소를 준비하던 도중에 찾아왔다. 사전에 비밀이 누설됐는지, 상소를 완성하기도 전에 오히려 역공을 당해 그는 다시 감옥에 갇히고 만다. 다행히 유향이 40대 중반일 때, 성제(成帝)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했다. 이 전환기에 석방되어 관료로 복귀한 유향은 이름을 향(向)으로 바꾼다.
사실, 그의 중년기 이후는 성제의 외척인 왕(王)씨 일족이 ‘호가호위’를 일삼던 망국 직전의 혼란기였다. 그러나 이름까지 바꾼 유향은 이미 고질병으로 굳어진 한나라의 ‘호가호위’ 정국에 예전과 다르게 처신한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신, 여성들의 전기(biography) ‘열녀전(列女傳)’, 고사집(故事集) ‘신서(新序)’, 설화집(說話集) ‘설원(說苑)’ 집필 등 왕성한 저술 활동에 집중했다.
이후 집필과 무난한 관료 생활을 병행하다가, 향년 71세에 세상을 하직했다.

‘권세에 기대어 사람을 속이다’란 의미를 가진 ‘장세기인(仗勢欺人)’이 ‘호가호위’의 유의어로 쓰인다. 의미가 비슷한 서양 표현으로,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나귀(An ass in a lion’s skin)’가 있다.
동서고금에 ‘스스로는 힘이 없으면서도 누군가의 권위를 이용해, 위세 또는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무시해버리는 것도 이런 위협과 현혹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잠재적 위험은 그대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어수선한 상황이 전개될 때마다, 나서서 상황을 정돈해줄 현명한 호랑이의 등장을 늘 기대하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