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불문 미래 불안과 정체성 혼란. 삶에 훅 들어온 AI와 기대 이상으로 늘어난 수명 탓에 낡은 생존 방정식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지금, 우리가 불안을 줄이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엔진은 뭘까요. 많은 전문가는 '질문'을 꼽습니다. 질문만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인생을 재정의하는 통찰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이들의 질문을 통해 내 질문을 찾아 나서는 여정인 '질문하는 인생' 시리즈의 이번 순서는 스스로를 '마인드 마이너'로 칭하는 송길영 작가입니다.
30명이 만드는 10억 서비스 등
개인이 기업과 경쟁하는 시대
조직·개인 모두 '일 재정의' 필수
끊임없이 "업의 본질" 물어야
송길영 마인드마이너 인터뷰

링 밖에서 훈수 두는 사람과 얻어맞고 쓰러지더라도 링 안에서 뛰는 사람. 굳이 이 둘의 선호도를 따지자면 후자 쪽이다. 인터뷰 대상도 가급적 후자 중에 고른다. 송길영 작가는 전자 쪽 인물이지만, 지난 9월 16일 만났다. 그의 시대예보 시리즈 최신판『시대예보:경량문명의 탄생』에 담긴 핵심 메시지인 '대마필사'를 더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기존 상식인 대마불사(大馬不死)를 뒤집은 대마필사를 외친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대뜸 문명 전환이라는 큰 얘기를 꺼내 들었다. 무거운 조직 안에서 규모의 경제 기반으로 성장해온 '중량문명'에서 이제 빠른 개인이 업무(task) 중심으로 협업하는 '경량문명'으로 바뀌는 대전환기라는 진단이었다. 그와의 대화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키워드 문답으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 경량문명.
A. 가볍고 민첩한 문명이다. 과거처럼 인력과 자본 투입으로 스케일업(성장) 하는 방식은 이젠 어렵다. 여기서 핵심은 인건비 절감이 아니라 의사 결정을 지연시키는 비효율의 제거다. 이걸 못하는 무거운 조직은 기술·트렌드 발전에 맞는 속도를 낼 수 없다. 1인당 기업가치 순위를 소개하는 대시보드 사이트 '린(Lean) AI 리더보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MAU) 10억 명인 메시지 앱 텔레그램 핵심 엔지니어는 고작 30명이다. 심지어 올 초 이스라엘 개발자 1인이 만든 노 코드 플랫폼(말하면 코드 작성해주는 솔루션) 스타트업인 베이스(Base) 44는 설립 6개월 만에 300만 달러 매출을 올리고 8000만 달러(1145억원)에 팔렸다. 이렇게 직원 숫자 없이 가치를 만든 기업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시대는 가볍고 빠른 경량문명이 기존의 중량문명보다 우월하다. 생산문명이라서 그렇다.

- 생산문명.
A. 경량문명은 소비문명이 아니라 생산문명이다. 주변에 "(AI 학습과 활용이) 힘드니까 나는 안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소비라면 그럴 수 있다. "온라인 직구 번거로우니 그냥 재래시장 갈래. " 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기자라면 "나는 컴퓨터로 기사 안 쓰고 종이 위에 붓글씨로 쓸래"는 안 된다. 송고·데스킹·출고 등 제작 시스템 전체가 디지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니까. 다시 말해 혼자 옛 도구를 고집하면 협업이 안 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안 할 수 없다. 어차피 그냥 하게 될 거다. 한 가지 더 염두에 둬야 할 건, 협력·협업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엔 사람끼리의 협력이었지만 이제는 인간 아닌 객체(AI)까지 협업 파트너로 들어왔다. AI를 도구로만 쓸 게 아니라 동료로 대해야 한다. "난 몰라, 아직 멀었어, 내 업종엔 안 올 거야. "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틀렸다. 전방위적으로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고 있다. 이걸 깨달은 많은 이들이 이미 프로슈머(생산자와 소비자를 합친 말)가 됐다.
- 프로슈머. 그리고 유료 구독.
A. 지난 2022년 챗GPT 등장 3년 만에 AI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AI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오라클 등 기업용 B2B 서비스 소프트웨어는 원래 비쌌지만, 개인용 사용자 소프트웨어나 앱은 대부분 무료거나 아주 쌌다. 그런데 서비스 초기부터 과금했던 AI 이미지 생성 서비스 미드저니는 물론이고 범용 AI인 챗GPT나 제미나이·그록, 검색 특화 퍼플렉시티 등도 무료 사용은 아주 제한적이고 적게는 월 20달러에서 많게는 300달러까지 구독료를 받는다. 적잖은 개인이 하나 또는 여러 개의 AI 서비스를 이용하며 꽤 큰돈을 별다른 저항 없이 쓴다. 개인도 기업처럼 생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프로슈머가 돼서다. 취미로 사용할 땐 10달러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100달러 써서 1000달러 가치를 창출한다면 기꺼이 쓴다. 1만 달러 벌 수 있다면 1000달러도 견딜 수 있다. 개인이 기업과 경쟁하기 시작하며 벌어진 일이다. 기업은 이미 켜켜이 쌓인 구조와 투자한 (인적·물적) 자원 탓에 낮은 비용으로 서비스(상품)를 내놓기 어렵다. 이런 조직의 간접비가 없는 개인은 가능하다. 이런 판에선 기업이 불리하다. 가령, 거대 스튜디오가 CF 하나 만드는 데 헬기로 찍고 자동차 움직이는 등 비싼 장비 동원하면 광고모델료 빼고도 수억 원은 쉽게 든다. 퀄리티 차이가 다소 있지만 이젠 1인 기획사가 AI만 잘 사용하면 300만원에도 상업 광고 제작이 가능하다. 덩치 큰 회사는 가격 경쟁력에서 이길 수가 없다. 대마불사 아닌 대마필사 시대가 왔다.
- 대마필사.
A. 대마(거대 조직)는 죽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이젠 거대함이 약점이 됐다. 지금까지는 큰 회사 들어가면 "인생 괜찮아" 였다. 그런데 대기업들 희망퇴직 대상이 과거처럼 50대가 아니라 30대까지 내려왔다. AI 파고 앞에서 조직(기업)이 힘든 거다. 아니, 조직도 생존 전략을 모르는 거다. 개인은 "대기업은 괜찮다"는 믿음을 "아닐 수 있겠다"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탐색을 해야 한다. 특히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 이상 조직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 업을 만들어 조직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앞으로는 어디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큰 덩치는 약점이지만, 알파벳(구글) 같은 빅테크는 예외다. 개인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태계(인프라·플랫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 빅 테크들끼리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경쟁적으로 인프라를 계속 제공하는 건 지금과 같은 독점적 지위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다. 그 생태계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개인과 기업이 쏟아질 거다. 그게 가능하려면 업(일)의 재정의가 필수다.

- 일의 재정의.
A. 업을 재정의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지금까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정리했는데 그게 더는 유효하지 않아서다. 사람과 AI가 각각 잘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서, 인간은 AI가 잘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AI는 크게 두 가지를 잘한다. 하나는 거대한 일, 다른 하나는 엄두가 안 나는 엄청난 양의 단순 반복 업무다. 가령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는 인류가 2%도 못했던 단백질 3차원 구조 모델링 예측을 거대한 재능 알파폴드로 풀어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화장품 8억5000만개의 성분표를 전부 분석한 후 이를 소비자 구매 패턴과 연결한 화장품 회사도 있다. 이렇게 사람이 할 일, AI가 할 일을 구분해서 인간이 할 일을 택한 다음엔 오랜 경험 등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인정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내가 하는 일을 재정의해야 한다. 특히 중장년층이라면 더더욱 "내가 하는 업의 본질이 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든 트렌드 변화든 그 업을 잘하기 위한 역량이 계속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여기 적응하려면 지금껏 우리가 구호로만 외쳐온 평생교육을 진짜로 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학습능력이 지금 당장의 지식이나 업무 스킬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를 제대로 구현하려는 기업은 CTO(Chief Task Officer·최고 업무 책임자)가 필요하다.
- CTO.
A. 모든 기업의 CHRO(최고인사책임자)는 CTO로 진화해야 한다. 과거 조직 설계 중심은 "어떤 사람을 뽑을까"였다. 이젠 업무의 어디까지가 AI가 할 일이고 어디까지가 사람이 할 일인지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이미 무신사 등은 채용 공고를 낼 때 '테스트 자동화 환경 구축 및 운영'을 내세워 특정 업무를 직접 할 사람이 아니라 그 업무를 자동화할 사람을 뽑기 시작했다. 인간이 하던 일을 없앨 인간을 채용하는 셈이다.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20세기 로봇이 과거 노예 노동을 대신한 것처럼, 이제 사람이 직접 할 필요 없는 일의 수고로움은 덜고 부가가치는 엊는 방식으로 변화하면 된다. 이렇게 일의 성격이 바뀌면 보상 체계도 바뀐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사는 정액제였다면, 앞으로는 종량제가 될 거다.
- 종량제.
A. 직장인 월급은 정액제다. 회사가 직원에게 산 시간만큼 매달 정해진 보상을 주는 게 월급이다. 사람 부리는 쪽에서 보자면 무조건 일을 많이 시켜야 유리하다. 상사가 "보고서 언제까지 가능해?" 이렇게 자꾸 재촉하는 것도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시키려는 의도다. 그런데 만약 건당 결과물로 보상한다면 어떨까.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시키려고 닦달할 이유가 없다. 출퇴근 시간도 무의미해진다. 모두 유연하고 독립적인 업무환경을 누릴 수 있다. 시간·공간 제약 없는 이런 종량제로 일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누구와도 협업이 가능한 프로토콜이다.
- 프로토콜.
A. 과거 부·차장, 임원 등 여러 직급 거치던 단계는 AI의 등장으로 축약되는 동시에 협업의 범위는 넓어진다. 조직 내에서 소수가 개인적 친분으로 하던 협업이 아니라 조직 내에선 사람과 AI, 그리고 조직 간엔 500만, 5억명과도 협업이 가능한 명확한 규칙, 즉 표준화한 프로토콜 기반으로 일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이미 드론 산업이 그렇다. 주문하면 수백만 개 분야가 공학적 협업을 해서 사흘 만에 나온다. 살아남으려면 조직은 협업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조를 재정의해야 하고 개인은 디스코드·깃허브 등 협업 가능한 툴로 프로토콜 역량을 쌓아야 한다.




![[이상직 변호사의 생성과 소멸] 〈10〉AI시대의 소통과 대화법 (상)](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12/28/news-p.v1.20251228.51a3202036634c63a20a082c06e314e3_P3.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