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우주의 눈동자' 나선 성운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

2025-06-09

[비즈한국] 나선 성운(Helix Nebula)은 우주 덕후들에게 특히나 사랑받는 천체다. 중심의 텅 빈 공간을 작고 둥근 가스 잔해가 에워싸고, 그 바깥에는 양 옆으로 더 넓게 살짝 찌그러진 타원 형태로 가스 잔해가 펼쳐져 있다. 마치 우주의 거대한 눈동자처럼 보인다. 워낙 매력적인 모습 덕분에 2014년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코스모스 다큐 시리즈의 메인 이미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나도 작년 출간한 책 ‘날마다 우주 한 조각’ 표지사진으로 이 성운을 활용했다.

나선 성운의 사방으로 흩어진 가스 구름 한가운데는 휑하니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오래전 외곽 대기가 날아가고 남은 죽은 별의 시체가 있다. 백색왜성이다.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백색왜성만 살아남아 홀로 외롭게 빛을 잃어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뜻밖의 놀라운 정체가 여기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곳에서 백색왜성의 중력에 사로잡힌 행성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안타깝고도 장엄한 최후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래전 별 하나가 죽음과 함께 남기고 간 아름다운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아직까지 또 다른 행성의 죽음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선 성운은 물병자리 방향으로 약 650광년 거리에 있는 가스 구름이다. 오래전 태양과 같은 별이 사라지고 남긴 흔적이다. 거대한 우주의 눈동자는 현재 지름 5~6광년 정도 너비로 펼쳐져 있다. 이 잔해는 지금도 초속 30km의 속도로 계속 퍼져가고 있다. 오래전 죽음을 맞이한 별이 외곽 대기를 날려버리면서 그 속살이 드러났고, 그것이 오늘날 나선 성운의 한가운데 백색왜성 WD 2226-210으로 남아 있다.

비록 이젠 더 이상 핵융합을 하지 못하는 죽은 별의 시체이지만, 별이 외곽 대기를 벗겨내면서 드러난 별의 속살인 만큼 그 온도는 굉장히 뜨겁다. 표면온도가 12만 도에 육박한다. 다만 별의 크기가 너무 작아 전체적으로 어둡게 보일 뿐이다. 이 백색왜성의 지름은 태양 지름의 약 2% 수준에 불과하다. 온도가 너무 높아서 하얗게 빛나지만, 왜소한 별이란 뜻에서 하얀 난쟁이, 백색왜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백색왜성은 굉장히 온도가 높기 때문에 보통은 자외선 수준의 아주 짧은 파장의 빛에서 많은 에너지가 관측된다. 그런데 나선 성운 중심의 백색왜성은 조금 이상했다. 자외선뿐 아니라 적외선 영역에서도 꽤 많은 에너지가 관측됐다. 2000년대 중반, 다양한 파장에 걸쳐 나선 성운 중심 백색왜성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적외선 초과가 발생하는 것은 백색왜성 주변을 두꺼운 먼지 원반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일 거라 추정했다. 연이은 관측에서 백색왜성의 스펙트럼에서 선명한 금속 성분이 검출됐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오래전 금속 성분을 머금은 소행성이나 행성이 별에 잡아먹히면서 백색왜성이 금속 성분에 ‘오염’된 흔적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러한 관측을 근거로 천문학자들은 나선 성운 중심 백색왜성 주변에도 우리 태양 주변의 카이퍼 벨트처럼 크고 작은 부스러기, 소천체들의 찌꺼기들로 채워진 먼지 원반이 있을 거라 추정했다. 또는 중심의 별이 살아생전부터 거느리고 있던 혜성들이 오르트 구름처럼 그 주변을 아직 에워싸고 있기 때문일 거라 추정했다.

2024년 중심 백색왜성의 밝기가 일정한 주기로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아직까지 행성이 하나 살아남아 그 곁을 지키고 있어서일 것으로 추정했다. 백색왜성 주변에 해왕성 정도 크기의 가스 행성 하나가 (성운 자체에 대해) 약 25도 기울어진 궤도로 맴돌고 있다면, 관측되는 중심 백색왜성의 밝기 변동을 설명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천문학자들은 백색왜성 곁에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행성 하나가 맴돌고 있을 거라 추정했다. 다만 중심 백색왜성의 밝기 변동이 행성 때문이 아니라 그냥 불안정한 백색왜성 자체의 변동 때문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나선 성운 중심 백색왜성에게는 이것 말고도 40년 가까이 해결하지 못한 미스터리가 하나 더 있다. 1980년대부터 천문학자들은 이곳의 중심 백색왜성에서 설명할 수 없는 선명한 X선 빛을 포착해왔다. 하지만 이건 이상했다. 보통 X선은 자외선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천체가 있을 때 만들어진다. 그런데 행성상 성운은 이미 오래전 별이 죽고 남긴 흔적일 뿐이다. 뜨거운 백색왜성이 있기는 하지만, 나선 성운에서 관측되는 강렬한 X선을 백색왜성 하나만 갖고는 설명할 수 없었다. 즉 무언가 더 필요하다.

찬드라 엑스선 우주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활용한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또 다른 두 번째 행성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나선 성운 중심 백색왜성 곁에는 행성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일찍이 별의 죽음과 함께 백색왜성의 강한 중력에 이끌려 별 주변에서 파괴되었고, 부서진 행성의 조각들이 빠르게 백색왜성 속으로 끌려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나머지 행성 하나만 그 곁을 맴돌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천문학자들은 오래전 목성 정도로 덩치 큰 행성이 하나 더 있었을 것이고, 이 행성이 백색왜성의 강한 중력에 이끌려 서서히 궤도가 줄고 으스러지면서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과정에서 행성의 물질이 백색왜성 표면에 아주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게 되는데, 이때 행성의 물질은 매우 극단적인 온도로 뜨겁게 가열될 수 있다. 그러면서 중심의 백색왜성 주변에는 뜨겁게 달궈진 행성의 부스러기들로 얇은 원반이 형성된다. 블랙홀이 별을 잡아먹을 때, 그 주변에 형성되는 뜨거운 원반, 강착 원반과 같은 원리다.

백색왜성 주변에 형성된 강착 원반은 온도가 매우 뜨겁기 때문에 X선에서도 충분히 빛을 방출할 수 있다. 이번 분석이 사실이라면, 나선 성운 중심의 백색왜성은 매우 독특한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중심의 백색왜성, 그 곁을 조금 평범한 소행성 벨트만 에워싸고 있는 게 아니라 더 안쪽에 아주 뜨겁게 달궈진 강착 원반까지, 안팎에 서로 다른 방식의 먼지 원반으로 에워싸여있는 모습일 수 있다.

1992년의 ROSAT, 1999년의 찬드라, 그리고 2002년의 XMM-뉴턴 망원경에 이르기까지, 10년에 달하는 긴 우주 망원경 관측을 통해 이제 우리는 나선 성운의 중심에 살고 있는 백색왜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X선의 변화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곳의 X선은 항상 일정하지 않다. 약 2.9시간의 짧은 주기로 세기가 강해지고 약해지는 규칙적인 리듬을 보인다. 천문학자들은 이 규칙성이야말로 여전히 이 백색왜성 곁에 무언가 함께 일정한 주기로 맴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원래 있던 목성만 한 거대한 행성은 이제 사라졌겠지만, 그 행성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남긴 잔해들이 아직도 그 곁에 남아 백색왜성 곁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곁에 붙잡힌 존재는 파괴된 목성형 행성의 잔해가 아니라, 비교적 질량이 작은 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행성에 비해 별은 훨씬 자체 중력이 강하기 때문에 백색왜성 곁에 다가갔다고 해서 쉽게 파괴되지 않는다. 따라서 백색왜성 곁에 있는 게 행성이 아니라 가볍고 평범한 별이었다면 지금 관측되는 선명하고 규칙적인 X선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나선 성운의 중심에서 백색왜성이 가스형 행성을 집어삼키는 현장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 추정한다.

이번 발견은 새로운 종류의 변광성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익숙한 변광성은 어느 정도 진화를 거친 불안정한 별이 스스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면서 밝기가 요동치는 경우였다. 그런데 이번 발견은 이미 다 죽어버린 별이 곁에 아직 남아있는 행성의 찌꺼기를 집어삼키는 과정에서도 비슷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밝기 변화가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별의 죽음의 과정뿐 아니라, 우주 곳곳에서 각기 다른 리듬으로 요동치고 있는 별들의 사연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나선 성운은 정확히 우리 태양이 앞으로 50억 년의 남아 있는 수명을 다 마치고 맞이하게 될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 태양도 그리 무겁지 않은 별이기 때문에 초신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딱 행성상 성운 정도를 남기고 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태양은 비대하게 부풀어오르고, 최후의 순간 자신의 외곽 대기를 사방으로 날려보내며 중심에 작은 백색왜성만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 지구는 이미 태양의 일부가 되어 사로잡힌 지 오래일 것이다. 다만 목성과 토성처럼 태양으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가스 행성은 처음부터 한꺼번에 파괴되지 않고 운 좋게 살아남아 백색왜성이 되어버린 태양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 태양계도 누군가에게 하나의 거대한 우주 눈동자가 되어 그들을 하염없이 바라볼 것이다. 나선 성운은 가장 아름다운 다잉메시지이자 50억 년 뒤 우리의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거울인 셈이다.

참고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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